13년. 흔한 이야기로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시간이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이인권 대표가 전북에서 예술경영자로 보낸 세월이다. 우리나라 지역의 문화지형이 황량하기만 하던 20세기 전북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내다보기라도 하듯 “버젓한” 문화예술공간을 지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며 20세기에 삽을 뜬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밀레니엄을 넘어 2001년 9월 22일 팡파르를 울리며 개관했다. 전라북도는 운영의 방식을 선진형 민간자율 운영체계인 민간위탁을 도입했다. 하지만 공모로 선정된 외지의 수탁단체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1년 여 지나 재공모를 통해 현 수탁기관인 학교법인 예원예술대학교가 맡게 되었다. 그것이 2003년 1월1일 이었다. 그로부터 초기에는 2년, 나중에는 3년 단위로 평가를 받아 올해 말까지 수탁운영을 하게 되어 있다.

현 수탁기관의 예술경영자(CEO)로 13년을 함께 해온 이인권 대표의 임기도 이달 말 만료된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예술의 중심에서 활동해 온 이 대표를 만나 감회를 들었다.

-먼저 지난 13년을 전북에서 보낸 감회는?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당신은 지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하고 했듯이 지난 13년이 그리 짧지도 않은 세월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훌쩍 지나가버린 것 같다. 전북에서 예술경영자로 보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추억의 금자탑으로 기억될 것이다. ‘젊어서는 미래의 꿈으로 살지만 나이 들어가면서는 과거의 추억으로 산다’고 늘 얘기해 왔는데 이제는 과거의 추억거리로 소중이 기록될 것으로 생각되어 기쁜 마음이다.

-소리문화의전당을 경영해 온 것에 대한 의미는?
▲전라북도가 민간위탁제도를 도입한 것은 획기적이었다. 대부분 문예회관이 관치로 운영되던 시절에 소리문화의전당과 같은 규모의 복합아트센터를 민간에 위탁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예술경영자로서 전문적 성과룰 평가받아 최다 보임의 기록을 세운 게 아닌가싶다. 한국기록원에서 이를 인증해 주었을 정도로 말이다. 무엇보다 낙하산이다, 관피아다 하여 여론이 들끓는 판에 공공 문화예술공간을 10년 넘게 경영해온 그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패턴이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일 수도 있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전무후무할 기록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무엇인가?
▲전북에서 예술경영자로 활동했던 것 자체가 보람이다. 어느 한 두 개의 사안으로 보람을 느낄 일이 아니다. 복합아트센터의 CEO로서 시설의 규모에 걸맞게 대외적 위상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보람이다. 사실 초기에 소리문화의전당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는 예산 규모로 비교하여 비슷한 규모의 공연장 반열에 끼워주지를 않았다. 지역 기준으로 보면 많은 예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만한 시설의 기준에서는 적합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저비용 고효율의 민간위탁의 장점에다 지속적인 이미지 브랜딩을 통해 주요 공연장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다.

-소리문화의전당의 안정적 운영의 바탕이 된 것은?
▲현 수탁기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중시하는 철학이었다고 생각한다. 수탁과 경영을 분리하여 예술경영자가 전문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 준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운영의 바탕이 됐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조직의 경영자가 지속적으로 보임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된 것이다. 조직이란 경영자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파벌이 조성되는 것이 상례다. 그러니 우리나라 공공 문예회관의 경영자들이 평균 2~4년마다 바뀌니 조직의 단합이 쉽게 이루어지겠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하모니’를 추구해야 하는 문화예술기관이 더 ‘카코포니(불협화음)’가 나는 실정이다. 

-조직 경영을 하면서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은?
▲소리문화의전당 경영의 핵심을 ‘청지기 정신’, ‘합리적 전문성’, ‘포괄적 지식력’에 두었다. 여기에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의 경영자로서 ‘섬기는 리더십’, ‘창조경영’, ‘지식정보 공유’를 경영 일선에서 솔선수범하려고 함으로써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어내며 남다른 조직문화를 구축하려고 노력해 왔다. 최고경영자로서 언제나 조직은 리더나 팔로워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구성원들이 자존감과 자긍심을 갖도록 했다. 그래야 예술기관의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믿었다. 곧 ‘지시적 통제’보다 ‘참여적 공감’이 존중되는 조직문화 체계를 구축해 왔다.

-전북 문화예술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21세기는 네트워크의 시대다. 예술의 흐름도 융복합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있다. 지역이 개방을 하여 물적, 인적 자원을 전북으로 유치하여야 한다. 전북의 문화예술이 발전하려면 지역이라는 틀의 한계를 뛰어넘는 마인드세트가 중요하다. 얼마만큼 중앙과 세계와 네트위킹이 되는가가 경쟁력의 필수가 된다. 중앙의 관점에서 전북을 보면 ‘음식 맛이 좋다’는 것을 주로 든다. 이런 시각을 보다 주도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 정체성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로 활동하며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믿을지 모르지만 나는 인생의 목표를 세워본 적이 없다. 단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성실’, ‘자신’, ‘인화’라는 생활의 가치를 실천해 왔다. 소리문화의전당의 운영 철학도 이것을 기조로 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다양한 기회가 찾아 왔고 예술경영자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나 나름대로 ‘긍정의 성공론’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재력, 권력, 명예를 갖춰야 성공했다고 하는 데 이것은 출세라고 하고 싶다. 그 세 가지를 갖추지 못했어도 보람과 자긍심을 갖고 자존감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 그래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던 ‘출세인’이 아닌 ‘성공인’이 되고자 한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40대 후반에 전북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이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시기다. 중국 노자의 말대로 ‘상선약수(上善若水)’ 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자세로 새로운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며 고독감을 고독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폭넓은 사색과 전문 분야 자기계발을 통해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긍정의 힘을 창생시킬 수 있는 바탕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이 문화적 소통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도 된 것 같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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