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엄혹한 폭정 속 변혁을 꿈꾸며 결성된 전북작가회의. 시대정신을 담은 날카롭고 힘 있는 글을 쓰는 문인임에 앞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한 명의 연약한 인간임이 진하게 와 닿는다. 전북작가회의(회장 김병용) 회원들이 잇달아 펴낸 두 권의 책을 통해서다. 한겨울을 예고하는 새 찬 바람 속,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일 그들만의 가족과 고향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먼저 소속 시인과 작가 49명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 수필집 ‘우리 집 마당은 넓었다’는 전라북도에 초점을 맞춘다. 전북 14개 시·군 중 자신이 태어났거나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곳의 기억과 풍경을 엮었다.

김명국 김병용 김소윤 김용택 김유석 김익두 김자연 김저운 김종필 김행인 박남준 박서진 박성우 박수서 박예분 박월선 박태건 배귀선 백가흠 복효근 서정임 서철원 신귀백 신재순 안성덕 오용기 오창렬 유강희 유수경 윤미숙 이강길 이병초 이소암 이영종 이윤구 이은송 임명진 임희종 장마리 장은영 장창영 정성수 채명룡 최기우 최동현 최자웅 하미숙 한지선 황숙이 그 주인공이며 화가 황진영이 삽화를 맡았다.

나고 자란 곳은 인생의 밑그림을 그려줬다. 김병용 소설가는 상상력을 키워준 진안의 지명과 이야기들 덕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백가흠 소설가는 무한한 창작 모티브로서 익산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서울이 쓸 수 없는 것을 백 작가의 펜을 빌어 익산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 연구가인 최동현 시인도 “소리의 고장 순창에서 났기 때문에 판소리를 좋아하게 됐고 연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풍경도 적지 않은 영감을 줬다. 아동문학가 김자연은 가을날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김제의 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갈래머리 여고생의 풋풋한 꿈을 떠올리고, 김저운 소설가는 능소화 꽃빛으로 물들어가는 부안의 서쪽 하늘을 보며 시를 외우던 단발머리 소녀를 회상한다. 동화작가 박서진은 남원 금지면 옛 기억 덕에 살구꽃이 피면 봄이 시작된 걸로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수필과비평사. 297쪽. 13,000원.

소설분과 회원 9명이 함께한 가족 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은 현 사회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가치와 의미를 여러 시대와 형식을 지닌 9편의 단편으로 전한다.

영·정조시대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미래를 그리는 SF 작품도 있고 관점과 필체도 제각각이지만 식구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다. 이는 3개 주제로 나눠 심도 있게 다뤄진다.

혈연에 기초한 전통적 관계에서 신성시되어온 가족애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4편은 ‘혈연과 가족애 관계의 다양성’, 물질적 가치에 밀려나 소멸돼가는 가족애를 2편은 ‘부(물질)와 가족애 가치의 역전’, 왕권, 가부장제 같은 제도를 다룬 3편은 ‘권력과 가족애의 다양성’에 해당한다.

한지선의 ‘여섯 달의, 붉은’은 동거녀를 잊지 못해 가족을 내팽개친 채 죽음을 택하는 남자를 통해 혈연이 가족애를 보증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김저운의 ‘개는 어떻게 꿈꾸는가’는 어머니의 재산을 탐내는 아들과 며느리의 꿈을 개의 그것에 빗댄다. 서철원의 ‘장헌’은 서로의 힘이 필요한 왕권과 신권의 갈등을 통해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인 권력욕을 부각한다.

현재진행 중인 상황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각을 제기하기도 한다. 피를 나눈 관계마저 소원해지고 개인주의가 허다한 요즘의 사태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현 시대에 맞게 개성의 존중과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예옥. 308쪽. 13,000원./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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