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야무지게 쓰던 춘자가 시를 일구고자 추리라는 새 이름으로 돌아왔다. 김추리의 첫 번째 시집 ‘물뿌랭이 마을로 가는 길’을 통해서다.

수필집을 세 권이나 출간한 그가 시단에는 오르지도 않은 채 시집을 낸 것에 대해 용감하다 내지 무모하다 같은 의견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특유의 매력을 또 다른 장르로 만날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반길 일이다.

첫 발을 내딛는다곤 하나 이미 몇 백 편의 시를 써 장롱 속에 꽁꽁 숨겨놨다는 시인이 선보일 작품들의 주제는 다름 아닌 자연이다. 꽃, 나무, 바람, 바다 등 자연물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부터 경외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노래한다.

눈에 보이는 생물과 본연의 의미를 뛰어넘기도 한다. 고향과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그곳의 매화꽃, 시냇물, 인심, 야트막한 시골 산자락, 아지랑이 지펴 오르는 봄 언덕이 잇따르는 가운데 동구에 솟은 느티나무는 왈칵 서럽고 마을 사람들의 웃음 띤 얼굴은 옥정호 맑은 물굽이에 어린다.

어머니는 또 어떠한가. 시 ‘가나안의 어머니’ 중 ‘연을 하늘에 띄우듯/정신을 허공에 놓은 채/한 생애의 일거리를/실 자새로 풀며, 날리며,/위태알한 목숨 줄 매단/탱탱한 연줄 한 가닥//’을 보면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음 졸이는 자녀의 비통함이 오롯하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환한 미소와 조그마한 것까지 챙기려는 따스한 마음씨를 거울로 비추듯 티 없이 맑은 글귀는 여전하다. 인간과문학사. 144쪽. 10,000원./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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