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6.77m)을 주봉으로 하는 지리산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서 100여리의 거대한 산악군으로 위엄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비극적인 민족상잔의 아픔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또 깊고 맑은 계곡을 품고 있는 수려한 풍광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부르고 있다. 특히 한 겨울 눈 시린 맑은 하늘과 하얀 눈의 조화는 지리산의 절경 가운데 하나다.

지리산은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1751m), 그리고 동쪽 끝 천왕봉을 주봉으로 봉을 중심으로 하여 100여 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종주는 대개 노고단 아래 성삼재에서 시작해 반야봉, 영신봉 등을 거쳐 천왕봉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종주는 봄, 여름, 가을은 물론, 한 겨울에도 2박 내지 3박 일정으로 이뤄진다. 겨울 지리산의 묘미는 깨끗함이다. 물론 폭설이나 한파가 몰아치는 날을 제외하곤 말이다.

전북지역에서 지리산에 오르는 길은 대개 지리산 북부 쪽에서 이뤄진다. 남원 주천을 지나 정령치로 가거나, 인월을 거친 뱀사골이 주요 이용지역이다. 천왕봉에 가까운 함양 백무동도 자주 이용되는 코스다. 특히 하동바위~참샘~소지봉~장터목~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백무동 코스는 전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정상 등정 코스다.
반면 지리산 남쪽은 전북에서 접근하기가 수월치 않다. 하지만 남쪽에도 중산리, 거림, 의신, 피아골 등 지리산 주 능선으로 올라가는 기점이 많다. 이 가운데 거림은 세석평전으로 올라가는 최단 코스로 인기가 많다. 경사가 심한 북쪽 백무동~한신계곡~세석평전 코스보다 덜 힘들기 때문이다.
거림(巨林)은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거림계곡은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하여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발원한 도장골, 세석평전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등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약 8㎞의 계곡이다.
1월 중순 이 코스를 탐방했다. 등산로는 거림 대형버스 주차장을 지나 시작된다. 시간을 잊어버린 듯한 오래된 가게를 몇 개 지나면 이정표가 나온다. 길상사 입구를 거쳐 대형가든 앞마당을 통과하면 바로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산로다.

거림~세석평전은 편도 5.5㎞의 이 등산로는 세석평전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완만한 길이다.
거림탐방지원센터에서 천팔교까지 약 2.7km구간 구간은 평탄한 흙길과 돌길이 같이 되어 있는 탐방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구간별 난이도에 따르면 전 구간이 보통의 난이도를 보인다. 좀 빠르게 걸으면 1시간, 천천히 걸으면 대략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천팔교에서 남해전망대까지는 이 구간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다. 급경사가 40~50분 이어진다. 1월이지만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두터운 겉옷을 벗고 배낭을 고쳐맨다. 마음속으로 한신계곡에서 오르는 길보다는 편하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옮긴다. 급경사가 끝나는 지점에 남해전망대가 나온다. 이 곳 전망이 지리산에서 5위안에 든다고 한다. 하지만 5위 안에 드는 전망은 자주 볼 수가 없다. 이 날도 상당히 청명한 날씨였지만 삼신봉을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전망대에는 ‘남해 삼천포를 찾아보세요!’라고 쓰여진 안내판이 있다. 하지만 너무 낡아 부근 조망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조망을 해치고 있다.
이 곳 남해전망대에서 세석 대피소까지는 거리 1.8km, 대략 1시간이 넘지 않는다. 계곡에 두텁게 올라앉은 얼음들이 지리산 주능선이 지척임을 말해준다. 남해전망대에서 세석대피소 갈림길은 비교적 완만하다. 이 갈림길은 삼신봉이나 쌍계사로 이어지는 남부 능선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500m만 더 가면 세석대피소에 도착하게 된다.
세석이란 이름은 잔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세석평전은 5~6월이면 철쭉의 향연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지리산 10경중 네 번째로 꼽힌다. 세석촛대봉 가는 길에 있는 세석습지는 우리나라 최대 고산습지다. 촛대봉은 천왕봉까지 가지 않고 지리산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촛대봉으로 향하는 주능선에 오르자 칼바람이 인다. 몇초간의 찬바람에도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아프다. 눈앞에 천왕봉이 펼쳐진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천왕봉 정상의 표지석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병재기자·kanadasa@

▲거림 가는길
전주에서 거림까지 승용차로 2시간 조금 더 걸린다. 전주에서 승용차로 소양IC(익산~포항고속도로)로 진입, 장수JC를 지나 함양을 거쳐 단성 IC(통영~대전고속도로)로 진출한다. 여기서 20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 입구를 지나 거림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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