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불멸의 시심을 수호하다

<명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익산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김종순 기자l승인2016.02.10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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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지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라면,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익산 문학의 대표적인 성지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병신년 새해를 맞아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문화의 도시로 힘차게 출발하고 있는 익산지역 문학의 대표성지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가람이병기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보았다.

 

▲현대 시조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진사마을에 가면 1901년에 건축된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1973년 6월 지방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초가지붕을 얹은 목조 가옥과 소박한 정자, 화려하지 않은 연못 등을 통해 소박하면서 검약한 가람 선생의 품성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람 이병기 선생이 나고, 생을 마감하셨기에 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

가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생가 앞에 도착하면 집 전체의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현재, 고패형식의 안채(본채)와 ‘-’자형의 사랑채와 고방채, 그리고 모정이 남아 있고 가옥 입구에 있던 행랑채 3칸은 철거되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한 가옥의 모습은 조선말기 선비 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정면에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가람 선생의 생가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이병기 선생의 동상과 ‘가람 이병기 선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동상이 세워진 옆 길을 따라 50여m쯤 올라가면 가람 선생의 묘지가 자그마하게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사각 연못과 오래된 배롱나무가 탐방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직사각형의 연못이지만 배롱나무에 꽃이 활짝 피는 시기가 오면 꽤나 운치가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연못을 지나면 4칸짜리 사랑채와 그 옆에 ‘승운정’이라는 모정이 서있다. 빛바랜 툇마루가 오랜 시간을 견뎌온 인고의 시간을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사랑채를 지탱하고 있는 굵은 나무 기둥들이 인위적이지 않아 생가 뒤로 펼쳐진 대나무 밭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움을 자아내 선비 가옥의 기품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사랑채를 지나 안마당을 가로지르면 가람 이병기 선생이 머물렀던 안채가 나온다. 안채는 안방마루, 건넌방, 부엌이 나뉜 전형적인 한국형 초가가옥의 구조를 보인다.

이색적인 점은 안채의 구조가 호남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ㄱ’자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잡석 축대 위에 높은 자연석 초석을 사용, 집 앞을 지나는 도로와 마을을 보는 전망을 고려했음인지 전체적으로 비교적 높게 지었다는 점이다.

안방과 건넌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안방 앞쪽으로 부엌이 돌출되어 있고, 건넌방 앞쪽과 옆쪽으로는 툇마루가 있다. 안체 뒤를 살펴보면 고방채와 장독대가 있고, 고방채는 광ㆍ헛간ㆍ안변소 3칸으로 이루어졌다.

가옥 전체는 기품이 있으면서도 소탈함이 우리 국문한사에 큰 업적을 남긴 가람 이병기 선생의 성품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의 수호신 탱자나무

전라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한그루의 오래된 탱자나무, 이 탱자나무는 이병기 선생의 생가를 수호신 마냥 지키고 있다. 가옥 주변으로 동백나무 산수유, 배롱나무 등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지만, 생가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유독 이 탱자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날카로운 가시만큼이나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 동안 보아왔던 탱자나무와는 다르게 그 크기에서 시선을 압도한다. 높이는 무려 5m를 넘음직하고, 나무의 줄기의 둘래는 60cm를 거뜬히 넘고도 남는다. 동서남북으로 곧게 뻗은 줄기가 근사한 수형을 만들어낸다. 보통 탱자나무는 4월과 5월에 꽃이 피고 9월과 10월에 열매를 맺어 샛노란 물결을 이루며 그윽한 탱자향을 자랑하는데, 코끝을 아리는 추위가 엄습하는 겨울에는 그 향을 느낄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탱자나무는 가람선생의 조부께서 심으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수령이 족히 200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자리를 200년 넘게 올곧은 자세로 지킨 탱자나무가 오롯이 국문학과 시조의 부흥에 힘쓰며 일제 치하에 저항했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곧은 기개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익산=김종순기자.soon@

 

가람(嘉藍) 이병기선생은=

가람(嘉藍) 이병기(1891~1968) 선생은 익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대표 현대시조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1925년 “조선 문단”에 ‘한강(漢江)을 지나며’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조 시인으로 등단한 것을 시작으로 시조 부흥 운동에 앞장서서 시조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데 노력하며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였다. 관립한성사범학교 재학 중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周時經)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웠으며, 1913년부터 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부터 국어국문학 및 국사에 관한 문헌을 수집하는 한편,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을 연구하고 창작하기 시작했다. 1921년에는 권덕규(權悳奎)·임경재(任暻宰) 등과 함께 조선어문연구회를 발기·조직하였다. 그 후 1930년 조선어철자법 제정위원이 되었고, 연희전문학교·보성전문학교의 강사를 겸하면서 조선 문학을 강의하다가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 및 각 대학 강사로 동분서주하였다. 6·25를 만나 1951년부터 전라북도 전시연합대학 교수, 전북대학교 문리대학장을 지내다 1956년 정년퇴임하였다. 1957년 학술원 추천회원을 거쳐 1960년 학술원 임명회원이 되었다.

대표 작품집으로 ‘가람 시조집(1939)’, ‘가람 문선(1966)’ 등이 있고, 대표 작품으로는 ‘난초 4’, ‘박연폭포’, ‘송별’, ‘난초 2’ 등이 있다.

/익산=김종순기자.soon@

 


김종순 기자  soonkim2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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