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타고 오네··· '바람의 시인'

<명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고창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 신동일 기자l승인2016.03.23l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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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고창출신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대표 시 ‘국화 옆에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이자 대중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시들을 많이 남긴 시인, 대중에게 가장 지탄받는 시인이기도 한 미당 서정주.

그가 남긴 무수히 많은 시들은 우리의 언어로 뽑아낼 수 있는 최고치를 끌어낸 듯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씻지 못할 오점들로 인해 평생 후회로 점철되었을지도 모르는 그의 생애는 여전히 손가락질 받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가 호불호로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지만 그의 화려한 문인으로서의 경력이나 돌이킬 수 없는 친일행적을 비롯한 오점들을 거론하기 보다는 이 시 한편으로 그의 존재감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의 시가 아름다운 만큼 그의 시가 조명을 받고 극찬을 받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애는 더욱 비난받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인들은 때로 자기의 삶이 미칠 영향력을 고려하지 못한 채 자기 성정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대쪽같이 강인한 성품으로 누군가는 여리디 여린 갈대같이 흔들리는 마음으로 또 누군가는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정의로움으로 또 누군가는 비열함과 아부로 점철된 삶이 있다.

모두 똑같이 감정이 있고 고뇌가 있고 갈등이 있었을 텐데 고결하게 일찍 생을 마감한 시인과 오래오래 살아 많은 시를 남겼어도 수치스런 오점들을 남기며 살아간 시인들도 있다. 미당 서정주는 어떤 시인인가?

‘국화 옆에서’는 가을 시다. 국화는 꽃은 꽃이되 사람의 마음을 홀 리고 훔치는 설레는 꽃이 아니라 푸근한 누나 같은 꽃을 의미한다.

꽃 중에는 진한 향기를 뿜는 화려한 꽃들도 있지만 은근한 향기와 담백한 빛깔로 곱게 피어나는 노오란 국화옆에서 서정주는 평생을 그런 누나 같은 사람들의 푸근함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넉넉해지는 가을, 치열했던 지난 계절들을 지나 인심이 후해지는 계절 가을 그 가을에 넉넉하게 피는 꽃, 국화 옆에서 잠시 지친 마음을 기대어 누나에게 의지하듯 쉬어가고 싶은 마음을 그려낸 시가 ‘국화 옆에서’가 아닐까 한다.

이밖에도 미당은 ‘견우의 노래’, ‘추천사’, ‘무등을 보며’, ‘자화상’, ‘신부’ 등 토속적이면서도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비해 논란이 되고 있는 미당의 친일행적 또한 비판받고 있다. 그가 일제말기에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신민화 정책선전에 앞장섰으며 조선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싸울 것을 독려하고 일본군대를 쫒아다니며 종군기사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국가적 민족적 견지에서 보면 분명 기회주의 성향이 깊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문학인으로 현대인에게 끼친 영향 또한 대단하다는 평가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친일 그건 비난의 대상이 분명하나 그 시대적 상황이나 그 사람의 환경적 여건 등 여러 가지로 또 다른 평가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정주 시인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1915년 5월 18일 전북 고창에서 서광현과 김정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줄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와 고창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동대문학교, 동광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조선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 동국대학교 등에서 출강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등단하여 같은 해 김광균, 김동인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냈다.

1941년 화사, 자화상 등 24편의 시를 묶어 첫 시집 ‘화사집’을 출간했으며 1942년 7월 매일신보에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이름으로 평론을 발표하면서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48년 시집 ‘귀촉도’ 1955년 ‘서정주 시선’을 출간해 자기성찰과 달관의 세계를 민족적인 정조로 노래했으며 이후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노래, 산시, 늙은 떠돌이의 시 등을 출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현대시인협회 회장,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 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5.16민족상, 자유문학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고창=신동일기자.sdi@

미당 시 문학관은 시인의 고향이자 영면지인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마을에 세워진 문학관으로 만해, 소월 등과 함께 각종 자료에서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폐교된 선운초등학교 분교를 리모델링하여 지은 건물로 넓은 들판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다섯 번이나 추천 되는 그의 천재성을 이곳에서 느껴볼 수 있다.

해마다 11월 3일 개관기념일을 맞아 미당시문학관과 동국대학교공동주최로 이곳에서 ‘미당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미당문학상 시상식, 백일장, 시낭송, 각종 기념공연, 전국 규모의 학술회의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고창=신동일기자.sdi@


신동일 기자  green04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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