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루'에 바람 들면 '근대역사' 누벼 보리

<레저&위크엔드: 익산 춘포 트래킹> 이병재 기자l승인2016.03.24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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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토 가옥

봄이다. 전남 광양과 구례에서는 매년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매화와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도내에는 전국적인 봄 꽃 축제가 없지만 그래도 잘 살펴보면 봄을 즐겁게 맞는 작은 행사가 있다. 익산문화재단이 4년째 진행하는 도보 트래킹 ‘춘포 힐링여행’은 올해 ‘봄나루에 부는 바람’을 주제로 다음달 초 진행된다.

트래킹의 출발지는 춘포역이다. 춘포역은 1914년에 세워진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다. 지난 2005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 210호로 지정됐다.

춘포는 한때 대장촌으로 불렸다. 대장촌은 일제지명이다. 한일합병 이전부터 들어온 호소카와 등이 평야지역인 이곳의 논을 헐값으로 사들이며 넓은 농장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일본인들의 이주가 잇달았다. 1909년에는 일본인 거류민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소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다. 일제는 이곳 지명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동네라는 뜻의 대장촌(大場村)이라 불렀다. 1914년 문을 연 춘포역도 당시 이름은 대장역이었다. 1996년에 가서야 역 이름이 춘포로 바뀌었으며 2011년에는 열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 됐다.

춘포역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익산시 금강교차로에서 옛 도로인 춘포로를 따라 가는 길이 가장 좋다. 광활한 평야를 마주하면서 춘포를 향한다면 왜 그곳(춘포)에 역이 생겼는지 짐작할 만한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넓은 평야에 나는 쌀을 일본으로 가져 가기 위해 역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면사무소 사거리에 도착해 역전식당(현재는 인근 대성아파트 앞으로 이전)간판을 이정표 삼아 춘포역으로 향한다. 옛날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붐볐을 이 길은 확장 공사중이다. 길 옆에 있던 오래된 상가 건물을 모두 철거해 현재는 공터로 남아 있다.

역 광장에 도착하면 ‘느린우체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방문객들이 비치된 엽서에 사연을 적고 스템프를 찍어 우체통에 넣으면 한 달에 한 번 매달 마지막 주에 발송해 준다.

춘포역 건물의 문은 항상 잠겨있다. 창문에 익산문화재단과 면사무소, 그리고 명예역장의 연락처가 적혀있다. 익산문화재단 김지은 선생은 “상주하는 관리인은 없고 역사 내부를 구경하기 원하는 방문객들이 연락하면 문을 열어 준다”고 설명한다.

역사 내부는 작은 전시관이다. 대합실 한쪽 벽에는 열차시간표와 여객 운임표가 그대로 걸려 있고 사진작가 김재관씨가 촬영한 옛날 대장역 건물 사진이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간이역의 추억 이야기를 담은 패널은 그때 그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무실은 지난해에는 춘포 어르신들의 문화학교로 사용됐다.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지역과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프로그램으로 도예, 그림, 글 등 당시 수업 결과물들이 전시돼 있다. 올해는 춘포는 물론 익산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문화교실을 준비하고 있다.

춘포역을 나와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보면 춘포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교회가 보인다. 이곳을 끼고 만경강 제방을 향해 동네 길을 걷다보면 정자 옆 수로가 보인다. 현재 만경강은 높은 제방이 구축돼 있지만 그 이전에는 이곳까지 강물이 들어 왔다.

그래서 이 곳 지명이 춘포(春浦)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봄개’. 개는 국어사전에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돼있다. 만경강 하류에 보가 생기기 이전에 바닷물이 이 곳까지 들어 왔다. 안정순(77)할머니는 “밀물 때면 물이 서서 들어 왔다. 그러면 가물치 등 (민물)고기들이 펄펄 뛰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바닷물이 들던 만경강 포구가 바로 춘포다.

여기서 유명한 에토 가옥은 바로 지척이다. 춘포지역 최대 농장인 호소카와 농장 관리인 에토가 1940년 대 자신의 부모를 모시고 살기 위해 지은 당시 최신식 집이다. 특히 2층 유리창 발코니 등 일본식 가옥 형태가 잘 남아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해방 후 에토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현재는 개인 집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토 가옥을 구경한 후 현재 한국농어촌공사 춘포지소로 사용되는 옛 우체국 건물을 지나 옛 정미소로 간다. 현재는 건물 외형만 남아 있지만 일제의 쌀 수탈 현장이란 점에서 잠시 들러볼 가치는 충분하다. 이후 호소카와 농장 한국인 주임이 살던 집으로 향한다. 일본 식 정원의 모습을 잘 갖춘 집이라고 하지만 잘 개방하지 않는다. 정원을 보기 위해 맞은 편 제방으로 올라 간다. 높은 제방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한편 반대편 만경강을 바라본다.

1960년대까지 유명했던 춘포 모래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음력 4월 20일과 단오날이면 모래찜을 위해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춘포역 앞길이 북적였다(안정순 할머니)’고 하니 당시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하류 목천포에 농용수 확보를 위한 보가 생기면서 물 흐름이 끊어졌고 결국 현재처럼 논밭이 돼 버렸다.

춘포트래킹의 주요 코스는 여기까지다. 이 곳에서 춘포면사무소 앞 도로를 따라 춘포역으로 돌아오면 된다. 걷는 거리는 약 2.7Km다.

김지은 선생은 “춘포트래킹은 지역의 유산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역사의 흐름을 살펴본다는 의미 외에도 따뜻한 봄 날, 가족들이 서로 손잡고 들길을 걷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재)익산문화재단은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사업의 도보트래킹 사업인 ‘봄나루에 부는 바람’ 참가자를 오는 30일까지 모집한다.

행사는 4월 2일 오후 1시부터 춘포역 및 춘포일대에서 진행된다.

근대문화유산을 답사하며 우리지역의 아픈 역사를 알아가는 한편 춘포역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 아픔의 역사를 딛고 우리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자 기획된 행사이다.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로 1가족 1나무 심기 행사, 퍼포먼스 댄스로 진행된다. 문의는 익산문화재단 예술지원팀(☎063)843-8817).


이병재 기자  kanada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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