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 굽이굽이 올라가는 산길을 상상하다보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 진다. 활기찬 바다 파도를 넘나드는 휴가도 좋지만, 잠시나마 마음에 명상을 함께 선물하는 건 어떨까. 7월, 여름의 한 가운데서 초록색 나뭇잎들이 반기는 진안으로 떠나보자.

▲굽이굽이 올라가는 ‘모래재’
최근 가장 ‘핫’한 영화라면 단연 곡성이 아닐까. 특히 곡성의 무당 일광(황정민 분)이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 굽이굽이 올라가는 고갯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달리는 일광의 자동차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을 떠올리다 보면 절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진안 부귀면 신정리와 화정리를 잇는 군도 32호선. 그곳이 바로 진안 모래재다.
화심리 방향으로 모래재 휴게소를 지나 모래재 터널을 빠져나오면 영화에서처럼 고부라진 도로가 나온다.
진안은 산이 8할이다. 마을과 마을이 고개로 연결되고 다른 고장을 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한다. 가늠도 어렵게 많은 고개들. 그 중 모래재는 노령산맥의 호남정맥에서 제일 먼저 산을 넘어 진안과 전주를 연결한 중요한 고개로 꼽힌다.
1972년 11월 개통된 이 길은 10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닐 만큼 분주하다. 이 길을 통해 진안의 석기와 양송이 등이 외지로 나가면서 사고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겨울이면 넘을 엄두도 내지 못한 고개, 1997년 새로운 26번 국도가 놓이면서 모래재 길은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간다.
느리게 오르는 반듯한 산길, 굽이마다 마을과 자연이 반겨주는 길, 줄지어 서 있는 초록빛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늘어서 맞이하는 이 길을 마주하다보면 모래재 길은 잊혀진 게 아닌 것도 같다.
최근에 모래재 길은 감식가라 할 수 있는 장소 헌터들에게 포착되면서 드라마나 영화의 새로운 배경이 되고 있다.
모래재 길 초입에 다다르면, 두어 번 완만하게 굽어지던 길은 원세동 마을 앞에서 늘씬하게 뻗어나가 먼 끝에서 여유 있게 사라진다. 그 길가에 메타세쿼이아가 계속 이어져 있다.
멀리로 사라졌던 길은 계속 이어지고, 나무들도 이어진다. 뜸한 사이에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마음이 아릿하다.
어떤 이들은 예쁜 운치라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고즈넉하다고 말한다. 무수한 가지들이 스스로 형상화한 완벽한 나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다 보면 절로 가로수길이 끝나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면 백곰이 서있다. 제 몸만 한 마을 표지석을 껴안고 있는 곰을 바라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난다.
모래재길에서 벗어나 곰의 꽁무니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웅치골 신덕마을을 만날 수 있다. 길은 ‘옛 웅치길’. 야생화를 키우고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는 이 마을 뒤편에는 편백숲 산책로가 있고 숙박시설도 있다.
옛 웅치길은 이 마을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데 이곳이 곰티재 길이다.
곰티재는 모래재길이 생기기 전 진안과 전주를 연결했던 아주 오래되고 유일한 고갯길이다.
길은 자연스레 생겼다고 전해진다. 호랑이와 늑대와 도둑떼가 출몰했고, 원님들이 가마를 타고 오를때부터. 이 고개에 500년 넘게 주막이 있었다 하니 길의 내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한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았던 산길은 1910년 신작로가 되었다. 모래재가 신설되기 전까지 차와 사람이 오갔고 사건 사고도 많았다. 99굽이의 비포장 도로였던 곰티재 길은 지금도 비포장 그대로의 산길이고 이제는 트래킹 족의 천국이 되었다.
웅치골에서부터 모래재길은 좀 더 가파르고 굽이지게 이어진다. 자그마한 저수지를 지나다 보면 활짝 열리는 고갯길. 그 곳에 모래재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 앞 솟는 약수도 놓치지 말자. 해발 480m의 지하 73m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 뽑아 올린 건강한 물이다. 휴게소 앞에서 길은 거의 직각으로 꺽인다. 저 앞은 모래재 터널. 진안의 부귀면, 터널을 지나면 완주의 소양면이다. 완만하게 오르던 모래재 길은 터널을 지나면서 엄청난 굽이로 하강한다. 길고 긴, 그 길의 끝에서는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섬진강이 시작되는 곳에서 ‘데미셈’
‘이 세상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가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5’ 중 나오는 시 구절이다.
데미샘은 섬진강이 시작되는 발원지다.
우리나라 5대 강 중 하나인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명 신암리 팔공사(1151m)의 북쪽 1080m 지점 서쪽 데미셈에서 발원해 임실 운암호, 구례 하동 화개장터를 거쳐 광양만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데미셈으로 가려면 우선 진안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로 가자.
3분 쯤 더 올라가면 데미샘 자연휴양림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서 데미셈까지는 1.19km. 오솔길을 50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숨이 차게 오솔길을 걸어가다 보면 슬쩍 그 자리에서 우리들을 반긴다. 직경이 두 뼘이 안될 정도의 작은 깊은 산속 옹달샘.
‘데미’는 지역의 말로 봉우리를 뜻하는 ‘더미’에서 왔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샘 동쪽에서 솟은 작은 봉우리를 동네 주민들은 천상데미(1080m)라 부른다.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 풀이하자면 천상샘이라고 보면 된다.
데미셈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를 꼽자면 ‘자연휴양림’일 것. 데미셈 아래 해발 700m의 울창한 활엽수림대에 들어선 휴양시설이다.
전북도가 숲속 약 200ha에 조성했다. 숲속의집(산막) 10동과 산림문학휴양관, 숲문화마당, 물놀이장, 정자,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숲치유를 목적으로 한 장기체류 휴양지인 만큼, 단체 손님들 이용이 가능하다.
숲속의 집은 9~25평형으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으며 비수기엔 30% 할인해 주니 기억해 두면 좋을 것 같다.
휴양관도 50여명이 모일 수 있는 세미나룸과 5~7평의 숙소 10실을 갖춰 단체 손님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게 조성해 놨다.
휴양시설에서 데미샘까지는 약 1.2km는 계곡 주변 층층나무 신갈나무 참나무 숲속에 명상을 즐길 수 있도록 작은 평상과 테이블을 놓고 발을 담글 수 있는 작은 못 5~6곳을 마련했다.
데미샘 자연휴양림의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 층층?신갈?참나무 등 울창한 숲 속엔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와 원앙이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덤.
도내에서는 12번째 자연휴양림이지만 도립 휴양림은 이곳이 처음이다. 도가 직접 운영 관리하며 시설사용 예약은 홈페이지에서 받는다./박세린기자?ice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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