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수덕사 근처 찻집에서 처음 접한 시는 온 몸의 전율을 선사했고 이후 입수한 시집 속 작품 하나하나는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그렇게 30여 년 전 세상을 등진 시인과 애독자가 시대를 뛰어넘어 조우하고 있다.

김병기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사계절)’을 펴냈다. 광주 전남 아동문학 1세대라 불리는 김일로(1911-1984)가 1982년 출간한 시집 ‘송산하’를 번역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글을 덧붙인 것.

글쓴이는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인정을 노래한 스무 자 남짓의 한글시와 그것을 이어받는 한 줄의 한문시 130편을 읽고 또 읽었고 서예로도 썼다. 짧은 글은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개울가를 산보하는 듯한 청량감으로 가득했고, 주석을 달 듯 가한 한문 구절의 함축적 의미는 깊고 깊어서다.

한글로 쓴 후 그것을 7언 한시구로 축약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는데 같은 의미라곤 하나 한글과 한문 각자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글자를 택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오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한문시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일반인들도 다르지 않을 터.

우리나라에도 시조라는 문학형식이 있고 가까운 나라 일본에도 5‧7‧5로 배열해 17자로 완성하는 하이쿠 형식이 있다곤 하나 우리만이 구사할 수 있는 특별한 장르로 개발할 가치 또한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2000년 동안 빌려 쓴 한자를 우리 문자로 정착시키고 세계인들에게도 한국어에서는 한글과 한자가 함께 쓰인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믿었다.

그런 이유에서 한글시는 그대로 두고 한문시를 한글로 옮기는 번역작업을 시작했다. 원문, 번역과 함께 순간순간의 감동을 녹인 짧은 글을 덧붙였다. 여기에는 김일로 시인의 자제 김 강 선생을 수차례 만나 전해들은 창작 배경이나 심경을 비롯해 소재의 전설과 일화가 담겨있다.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서예작을 선뵈기도 한다.

가령 ‘내사/뻐꾸기/벗 삼아/산촌에 살래/뻐꾹/뻐 뻐꾹//’은 ‘산구일곡호우성-뻐꾸기 노래 한 곡은 좋은 친구의 목소리’로 표현된다. 김 강 선생은 “아버지는 동갑내기로 격의 없게 지내시던 ‘고향의 봄 작사가 이원수 선생이 2시간 넘게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쪽지를 남기고 집에 돌아오셨다. 그 내용이 바로 이 시”라고 언급했다.

‘꽃향기가/하도 매워/시내 찾아/달을 핥는/사슴/한 쌍’은 ‘화향취록독반월-꽃향기에 취한 사슴 반달을 읽고 있네’로 해석된다. 저자는 “몸을 구부린 채 물 속에 잠긴 달을 보는 사슴의 모습을 읽는다고 말한 참신하고 섬세한 표현력이 감탄스럽다”고 말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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