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맛이다"

<전라일보가 만난 사람: 한국무용 '춤 모노드라마' 창시자 계현순씨> 이병재 기자l승인2016.10.23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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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춤

춤은 그에게 일상이다. 자연에 가까운, 자신만의 춤을 추고 싶어 시골에 남았다. 2011년 서울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을 마치면서 남원에 정착한 계현순. ‘춤에 배고파서 선생님들을 배반(?)했다’는 그의 고백은 모노드라마로 완성돼 가는 중이다.
 
가장 먼저 물었다. ‘춤이란 뭔가요?’
“그 질문이 가장 어렵다. 나한테 춤이란 그냥 다른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다. 처음엔 춤을 추는 일이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자부심과 잘난 척.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근데 아니더라. 그 것이 내 춤을 가짜로 만들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편안 하게 살다보니 내 일상생활이 편안한 춤으로 표현되더라.”
그가 제자들에게 항상하는 말이 있다. ‘춤은 맛이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들었지만 만든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춤의 맛을 만들어 내느냐를 고민하라는 얘기다.
“춤을 보전 의미로 전승해 가지만 그래도 결국은 그 맛은 본인이 내야 된다. 똑 같은 맛을 내려 해도 춤을 추는 그 시대의 자연과 기후환경, 춤을 추는 사람의 마음 등 모든 조건에 따라 (춤의)맛이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틀에 맞춰진 춤보다는 자신만의 춤을 강조하는 계현순은 욕심쟁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한영숙, 이매방, 강선영 등 여러 큰 선생님에게 배우면서 계속 목말랐다. 지금은 목사로 활동하는 문일지 선생님께 춤을 배우면서도 고민했다. 분명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전통 춤’이 맞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다른 ‘무엇’을 갈구했다. 감히 선생님들 근처에도 못가지만 결국 ‘나만의 춤’을 찾기 위해 탈선을 하게 됐다.”

▲ 신칼대신무

아직 그의 탈선은 진행중이다.
“매번 춤을 출 때마다. 이게 아닌데, 자연에 가까운 춤을 추고 싶은데, 팔 하나만 들고 있어도 우주를 표현한 것 같은 선생님들처럼 저런 멋진 그림을 만들고 싶은데. 아직 부족하다. 예술은 내가 표현하는 것이기에 선생님들이 주신 양분, 퇴비 먹고 열매를 맺고 또 씨를 뿌리는 일을 반복하며 내 나름의 춤을 추고 싶다.”
계현순하면 떠오르는 무대가 있다. 지난 2014년 9월 전주전통문화관 경업당에서 펼쳐진 모노드라마 '사랑해요'다. ‘한국무용 최초로 시도된 춤 모노드라마’로 1시간여 동안 살풀이부터 신칼내신무, 승무를 공연하며 춤 공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기존 공연처럼 이건 살풀이, 이거는 승무, 이거는 태평무, 이거는 춘행전이라고 단품을 보여주기 싫었다. 이런 춤이 다 하나가 됐는데 그 하나가 이어져서 관객에게 전해준 것이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이별이었는지, 아니면 고통이었는지 뭔가 주제를 선택해 객석에 전달해주면서 관객들과 공감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 ‘모노드라마’를 구상했다.”
하지만 모노드라마의 진짜 힘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예술로 승화돼 무대에 올라온다. 그의 국립국악원 마지막 무대였던 무용극 ‘사랑의 메아리’가 시골 길에서 마주쳤던 지게꾼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표현한 작품이었던 것처럼 드라마의 주인공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란 점이다. 어느 절에서 마주친 할머니의 쪽진 머리와 표정이 드라마 대사와 분장으로 관객을 만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다 예술이다,
“누구든지 봤을 적에 ‘그래, 그래 맞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다 춤이 된다. 쉬워야한다. 누구든지 한국무용을 봐도 어렵지 않아야 한다. ‘저 사람이 왜 저 춤을 지금 추는가’를 미리 살짝 설명을 해준다는 의미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가 다 각자의 인생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모노드라마는 지난해 11월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모노드라마-사랑하나이다’에 이어 올해 4월 국립국악원에서 ‘계현순의 천진난만-춤 하나 그리고 춤 하나 지우고’로 이어졌다. 내년에도 두 세 차례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1980년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하며 춤꾼으로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키가 작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다. 40여 년을 무용단에 몸담으며 ‘인생이 곧 춤’인 삶을 살았다. 춤을 인생으로 여기는 제자들에 대한 조언 가운데 기본은 ‘장단과 소리’다.
“판소리 선생님들 공연할 때마다 중저음을 내면서 선생님이 어떻게 움직이나 몸짓 등을 봤다. ‘소리속’이라고 하는데 소리를 이해하는 것이 춤의 가장 기본이다. 이후에 자신의 춤에 여러 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맛과 같이 춤의 오미(五味)를.”
다음은 마음가짐이다.
“선생님이 ‘너보다 저 아이가 더 잘 춘다’고 하면 잘 추는 것이다. 인정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남과의 경쟁은 ‘짓밟기’가 아니라 누가 더 ‘노력’하는가 중요하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옛날 선생님이 말씀하신 ‘먼저 사람이 되라’는 그 말. 이제는 정말 사무친다.”
그의 이야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낱말이 있다. 자연, 일상, 예술이다. 강원도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시립무용단과 국립국악원에서 오랜 생활을 한 그가 남원 식련리에 둥지를 튼 이유는 ‘자연, 일상, 예술’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마주친 할아버지의 지게 춤에서 영감을 얻었듯이 여기에는 내가 원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 땅을 밟고 잡초랑 같이 살면서 보니까 ‘역시 흙이 제일 깨끗한 것이었구나’를 느낀다. 그 흔한 잡초도 자연 속에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자연에 가까운 춤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아직 해결 못한 고민이 있다.
“자연에 가까운 춤을 만들고 싶은 데… 첫 번째 모노드라마 공연을 하면서 제 스스로 ‘아이구 욕심을 비워야지 배워야지, 이제는 욕심을 비우는 것이 뭔지 알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 끝에 다시 욕심 생기더라. 그래서 자꾸 더 노력 한다. 비우려고. 죽을 때 가져가는 것 아니니까.”
직설적인 화법으로 몰아치기도 했지만 감성이 넘치는 부드러운 표정과 수위를 가늠할 수 없는 재미있는 농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춤으로써 감투를 바라지 않았다’는 계현순의 춤에 대한 열정을 기대한다.
/이병재기자·kanadasa@

▲계현순 약력
- 상명대학교, 대학원 졸업
- 1980~1989 서울시립무용단 단원, 부수석
- 1989~1998 서울 국립국악원 무용단 수석
- 1998~2009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무용단 안무자
- 2009~2011 서울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 현) 예사랑춤터 무무헌(無舞軒) 대표

 

 


이병재 기자  kanada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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