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과 상황은 존재하나 그것이 최근에 겪었던 사건 내지 정서와 직결된다면 공감은 배가 될 것이다.

전주시립극단이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덕진예술회관에서 연 제108회 정기공연 ‘사회의 기둥들’은 시의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극단이 지난 2년 간 보여준 생소하고 어려운 번역극의 연장선상으로 향후 방향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 리뷰

140여 년 전 노르웨이가 배경인 작품에는 현대 한국과 들어맞는 부분들이 존재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 뒤로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회 기둥들의 모습은 일부 지도자들을 연상케 했고, 잘못을 덮고자 고장 난 배가 폭풍우 속 출항하는 전개는 세월호 참사와 맞닿았다.

2014년에야 한국어로 번역된 연극을 전주에서 발빠르게 올린 것도 눈길을 끈다. 지역 초연임에도 탄탄한 원작 덕에 복잡한 줄거리와 10여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소화할 순 있었지만 얼마나 공감할 지는 미지수다.

원작만 좇다보니 지금, 이곳을 비추기엔 역부족인 것. 연극인 A는 “오늘날 가진 자들이 어떤 시련을 겪었다고 해서 그렇듯 쉽게 반성하던가. 원래 내용이 그렇다 한들 수긍할 수 있는 복선과 재해석이 부족했다”면서 “배만 나오면 세월호인가. 문제가 생길 게 뻔한 배를 출항할 때 과정과 심경을 고정된 배경에서 대사로만 전달하다보니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연극인 B는 “처음 보는 내용에 어색한 어투까지 신경 쓸 게 많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게 이유다”라며 “확실하게 현대화하거나 한국화해 출항으로 드러나는 가진 자들의 이면을 조명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2014년 LG아트센터에서 상연한 동명작은 무대를 배로 형상화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사를 더해, 침몰하는 배와 함께 몰락해가는 기둥들을 보여준 바 있다. 고전을 현대식 말투 및 의상이나 한국식 이름으로 바꿔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시립극단, 갈 길은

문제는 극단이 지난 2년 간 ‘사회의 기둥들’과 거의 비슷한 흐름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번역극 위주로 구성해 관립연극단체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석관’을 시작으로 ‘허삼관 매혈기’ ‘사랑이 필요해’ ‘어느 계단 이야기’ ‘벚꽃 동산’ ‘모자를 바꿔라’를 펼쳤는데 어렵다, 지루하다는 의견이 지속돼 왔던 게 사실.

연극인 C는 “번역극 중에서도 파묻혀 있는 것들로 고르다보니 고전의 작품성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회적 이슈, 빼어난 재해석, 무대미학 중 하나라도 뒤따르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시원치 않다. 관객이 줄어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대안으로는 일반 관객들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작업이 제기됐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시도하는 동시에 대중적인 작품도 다루는 등 균형을 맞추는 게 관립단체의 역할이라는 게 중론이다.

홍석찬 전주시립극단 연출은 “지금껏 시립극단을 지켜본 후 가장 취약하다고 여긴 사회비판적인 것들을 다뤄오고 있지만 다소 어렵다는데 동의한다”면서 “내년 전주 꽃심을 주제로 한 창작극을 초연하고 레퍼토리도 이어가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