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에 깃든 마을의 '심장' 곁엔 언제나 '푸른 봄'

<명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장수 창원 정씨 종가·정상윤 가옥> 엄정규 기자l승인2016.11.16l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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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정씨 종가 전경

▲창원정씨 종가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사계리 580)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사계리에 창원 정씨 종가(宗家)와 정상윤 가옥이 있다.
장수읍 대성리 비행기재를 굽이굽이 올라 넘어서면 내리막길 아래로 드넓은 산서면의 황금들판이 펼쳐져 있는 사계리 조그마한 마을에 자리잡은 창원정씨 종가와 정상윤 가옥을 만날 수 있다.

창원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의 문종과 선종 때 대승상을 지냈고 대양군(大陽君)에 봉록되었다. 그러나 곧 참소를 당하여 조선에 유배되었는데, 이때가 신라 문성왕 때이다. 정덕성의 둘째 아들인 정응도(丁應道)가 신라에 공이 있어서 나주군(羅州)에 책봉되어 호를 금성군(錦城君)이라 하였다.

창원 정씨의 입향조는 정덕성의 손자이자 정응도의 아들인 정필진(丁必珍)으로, 역시 신라에 공을 세워 창원(昌原)에 책봉되어 호를 의창군(義昌君)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창원 정씨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산서면 사계리의 창원정씨 종가는 조선시대 유헌 정황(丁煌)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종가이며 1999년 11월 19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자료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창원정씨 칠세손인 정황(丁熿), 호는 유헌(遊軒)으로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을 역임하고 조선 중종조의 명신이며 이퇴계,기하서와 교장(交講) 하였으며, 유헌 정황은 인종대왕의 장례 때 예법을 준수할 것과 도의정치를 주장하다가 정미사화 때 거제도로 유배되어 일생을 마쳤다.

▲ 창원정씨 종가 사랑채

창원정씨 종가는 사계리 마을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문 양쪽으로 은행나무 두그루가 노오란 자태를 뽐내며 버텨 서있고, 앞쪽으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그 너머로 낮은 야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집터가 좋다고 전하는 이 집 안채 앞마당에 있는 검은 바위 주변을 파면 '천하대지(天下大地)'라고 새겨진 글씨가 있다고 한다.

가옥구조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와 행랑채는 조선 철종 5년 1854년에 정황의 후손 정상규가 지었으며, 행랑채와 솟을대문은 1927년에 정양수가 건립한 상류주택으로 지붕은 전통한식 팔작지붕 형태이며,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구조로 안채와 왼쪽에 사랑채, 오른쪽에 행랑채, 헛간채가 있다.

특히 창원정씨 종가 오른쪽에는 있는 창원정씨 작은종가인 정상윤가옥 보다 규모가 작고 소박하며 실용적으로 건축되었으며 행랑채는 사랑채와 축을 달리하여 경사지게 놓여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 모두 중앙 앞뒤에 툇간을 두었는데 툇간 양쪽 끝은 겹집 구조로 되어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 정상윤 가옥 안채

▲ 정상윤 가옥(丁相潤 家屋)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사계리 82)
창원 정씨 종가 오른쪽에 위치한 정상윤 가옥은 1938년 건립된 전형적인 농촌 부호의 가옥이며, 사랑채에는 '언제나 푸른 봄을 간직한다.'는 영춘헌(永春軒)이라는 현판이 있다.

1984년 4월1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자료 119호로 지정된 정상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1938년에 지어진 집이다.

안채는 남향으로 정면5칸, 측면3칸으로 팔각지붕이다. 정면의 기둥은 원기둥이며, 나머지 기둥은 모두 각기둥으로 천정위에 모두 다락을 넣은 것이 특징이고 환풍을 위해 전후면에 빛살창을 넣었다.

또한 안채 서편 뒤쪽으로 부엌이 있고, 앞쪽으로 방이 하나 있으며 또 안방이 있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는 미닫이로 구성되고 그 다음이 대청마루이며 앞뒤로 방이 2칸 있으며 안방은 뒤쪽으로 조그마한 방이 하나 더 있는 겹질의 형태이다.

▲ 정상윤 가옥 사랑채

사랑채는 안채의 정면 앞쪽에 배치, 기둥은 원기둥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며 팔각지붕이며 영춘헌(永春軒)이라는 현판과 무첨당(無添堂)이라는 당호(堂號)가 걸려 있으며 안채와 같이 천장위에 다락을 만들고 ㄱ자형으로 동쪽으로 뻗친 대청누각으로 사랑채도 안채와 같이 측면 기둥은 모두 각기둥이다.

서쪽으로부터 두 개의 방이 있는데 그 사이는 안채와 같이 미닫이, 뒤쪽으로 부엌이 있으며, 윗방 다음에는 대청마루가 있는데 대청의 뒤쪽에 사당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이곳에 신위를 모신다. 그 다음이 건너방이고, 거기서 남으로 뻗쳐서 누각형태의 마루가 있어 동서남이 탁 트여서 시원한 감을 준다.

▲ 정상윤 가옥 안채

곳간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남북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으며 행랑채는 곳간채의 낮은 편에 있는데,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기둥은 각기둥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하나씩 방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를 통하는 안문은 팔각지붕에 홑처마, 그 옆에 조그마한 소문이 있다. 문의 윗부분은 자연스럽게 타원형으로 짰는데 아주 인상적이다.

한편 정상윤가옥은 처음 건립 당시의 모습으로 잘 보존되어 산서면 오산리의 권희문 가옥(전라북도 민속문화재자료 제22호), 번암면 노단리의 장재영 가옥(전라북도 민속문화재자료 제21호)과 더불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자료의 전통가옥으로 지정되어 조선시대 농촌 가옥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장수=엄정규기자·cock27@


엄정규 기자  crazycock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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