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정의 장편소설 <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조선탐정 박명준(신아출판사)>은 조선왕조실록의 한 구절에서 시작한다.

‘박수영이 임진년의 변란을 당하자 적 속으로 들어가 나라를 배반하였으니 형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가 그것인데 임진왜란이 끝난 지 7년이 되는 1605년에야 처벌을 내린 것에 의문을 품어서다.

불이 켜진 머릿속엔 상상의 나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일본 오사카에 자리한 천수각으로 훌쩍 떠나기 이르렀다. 그곳에서 차고 넘쳐 주체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부산 왜관의 무역상인 박명준과 그에게 사건을 의뢰한 하이쿠(일본의 시)의 명인 마쓰오 바쇼가 1665년 2월 오사카 인신매매 사찰인 시라쓰카지에서 발생한 집단 참살사건을 조사하던 중 그곳에서 발견된 금서와 찢겨 사라진 결말을 추적한다는 줄거리.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과 구체적인 고증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팩션소설 형식을 갖추는가 하면 일본사를 통해 새롭고 폭넓은 시각에서 한국사를 바라볼 수 있다.

전작인 ‘왕의 밀사’와 번외편 ‘백안소녀 살인사건’에 이어 또 다시 등장하는 인물 박명준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경계인이자 자유인으로 설정한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에도 시기를 실감나게 드러내고자 장사꾼이란 직업도 덧입힌다.

덕분에 주인공은 깊고 넓은 관점을 지니고 미스터리 소설로서 사건 추리와 탐정 수준을 높인다. 소설 속 소설이라는 구조와 금서에 임진전쟁 종결이 담겼다는 설정까지 더해 박진감을 극대화한다. 당대 풍정을 재현시키는 가면음악극 노와 화려한 유곽 요시와라, 그속에서 피어나는 사랑도 주목할 대목이다.

작가는 “초판 제목은 <제국의 역습>이었으나 이를 수정, 보완했다. 박명준 캐릭터는 3번째로 등장한다. 반일에 치우친 한국사회 기류에 그 같은 시각이 존재해야 균형이 잡힐 수 있다는 염원 때문이기도 하다”라며 “내년 여름 박명준 네 번째 시리즈를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 출생으로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한국사뿐 아니라 일본사를 비롯해 동북아시아 역사에 천착하고 있는 팩션 작가다. 주요 작품으로는 <바늘귀에 갇힌 낙타> <소설 김대중> <해월> <8월의 크리스마스> <일지매> <부용화> <노량> <왕의 밀사> <백안소녀 살인사건> <비사문천 살인사건> <이방원 정도전 최후의 전쟁> 등이 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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