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과 장미와 들쥐 윤지용 도서출판 기억 대표

 

절망과 분노의 나날이다. 온 나라에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흐른다. 자고나면 ‘사상초유의 일’들이 드러나니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정부수립 이래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형사피의자로 지목되었다.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할 대통령이 특정 계층만을 위해 일했어도 큰 잘못인데, 숫제 어느 한 가족의 탐욕과 자신의 미용을 위해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불법을 저질렀다. 대학입시부터 문화예술계와 체육계, 재계와 재외공관까지 정말 구석구석 꼼꼼하게 분탕질을 했다. 이 정도면 비리의 수준을 넘어 ‘만행’이고 ‘약탈’이다.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가 불소추특권 뒤에 숨어 버티고 있는 것도 나라를 구차하게 만드는 일인데, 심지어 청와대에서 차마 지면에 옮기기 민망한 온갖 해괴한 약품들을 사들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노답”이라는 말이 나온다. ‘답이 안 나온다’, 즉 ‘대책이 없다’는 뜻으로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그렇게 불쌍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건너온 세월을 돌이켜보자. 1960년대에 영국의 한 언론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썼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직후에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위컴이라는 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학살자 전두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암시하며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어떤 지도자가 집권하더라도 복종한다”고 조롱했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았었다. 학살자가 대통령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나라였다. 온 국민이 숨죽여 살았다. 공권력의 가장 말단에 있는 자들에게 핍박당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진실을 알리려는 의로운 이들은 대학도서관 옥상에 밧줄을 타고 매달려 유인물을 뿌려야 했고, 고문당하고 감옥에 가야 했고, 자결하기도 했다.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그 수많은 희생에 힘입어 우리는 마침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냈다. 들쥐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 우뚝 섰다. 권력의 밀실에서 벌어진 온갖 추악한 비리들, 그들끼리만 알고 넘어가려 했던 일들이 햇빛 아래 드러난 것도 우리가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힘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파괴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던 자들이 국민에게 ‘적발’되어 패퇴하고 있다.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추위를 잊은 채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고 방송사가 이를 생중계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 그러니 자조하지 말자. ‘내가 이러려고’라는 자괴감은 머지않아 쫓겨나 감옥에 갈 대통령의 몫이다. 당당히 자부심을 갖자. 대한민국은 촛불이 권력을 이기는 나라이다. 우리는 이러려고 국민한다!

 

참고로 덧붙이는 사족: 사실 위컴이 말했던 것은 ‘들쥐(meadow mouse)’가 아니라 ‘레밍(lemming 나그네쥐)’이었다. 나그네쥐는 유럽의 동화로 잘 알려진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그 쥐다. 피리소리를 따라가 단체로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박멸되었다는 그 쥐에 우리를 빗대어 권력자에 맹종하는 국민으로 깔보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나그네쥐는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라 떼를 지어 강물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개체 수의 과잉으로 식량이 부족해져서 종 전체가 멸종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종족보존행위이다. 그런 본능적인 희생으로 나그네쥐는 유라시아대륙 일대에서 가장 널리 번식하는 설치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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