꿋꿋한 선비 가난한 겨울

오피니언l승인2016.12.19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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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한선비가난한겨울   김 재 춘   (전.완주동양초등학교장)

 조선의 선비는 학문을 닦는 사람을 이른다. 꿋꿋한지조와 강인한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했다. 효도하고 공경하고 충성하고 예의를 지키며 의롭고 청렴하게 사는것을 선비정신으로 삼았다.
 조선의 선비는 절개를 지키기로 유명하다. 가난하게 살망정 비굴하게 굴지 않았고,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어도 나라를 위하는 일에 앞장섰으며,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다. 학문의 근간이었던 성리학의 가르침대로 평생을 살았다.
 소학(小學)입교편에 선비의 삶을 4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출생에서 9세까지 가정에서 예의범절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다. 2단계는 10세에서 39세까지 학문을 연마하고?예(禮)를 본격적으로 연마하는 시기다. 3단계는 40세에서 69세까지 벼슬에 나가 배운 것을 실천한다. 마지막 단계는 70세 이후에 벼슬에서 물러나 권력이나 지위를 탐내지 않는 단계다. 즉 선비는 청소년기에 독서와 학문연구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과 지성을 쌓는데 매진했다. 장년이 되면 경험과 지성을 바탕으로 사군이충(事君以忠)하고, 정치사회가 평안하도록 힘쓴다고했다.
 이덕무 ‘한사(寒士)의 겨울나기’대목이다. ‘내가 거처하는 띳집이 몹시 추웠다. 입김을 불면 성에가 서려 이불깃에서 와삭와삭 소리가 났다. 게으른 성품에 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일어나 한서(漢書)한질을 이불위에 죽 늘어놓아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아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얼어죽을 것이다. 어젯밤 집뒤편으로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생각하다 마침내 ‘논어’ 한권을 뽑아 바람막이로 삼았다. ‘한서’로 이불을 만들고 ‘논어’로 바람막이 병풍을 삼는 일이 어찌 한나라 왕장이 소가죽을 덮은 것과, 두보가 말안장을 덮은 것보다 못하리오.’ 가난한 선비 이덕무는 겨울나기가 더욱 어렵다. 배고픔뿐만아니라 엄동설한 세찬바람을 막아보려는 그의모습에 가슴이 아린다.
 조선후기이옥(李鈺)의소품문(小品文)도 있다.‘대한(大寒)소한(小寒)날씨에나는 차가운 방에서 옷을 벗고 누웠다. 때는 삼경인데 눈보라가 몰아쳤다. 아궁이는 온기가 없고, 이불도 가볍고 얇다. 온몸이 떨려 잠을 잘 수가 없다. 몸을 움츠려 이불속에 묻혔다. 쌀도 없고, 땔감도 없다. 병풍도 없고, 깨진 화로에 불씨도 없다. 빈곤한 살림 이렇게 춥고 긴 밤을 지내지 않을 수 없다.’ 춥고 배고픈 설움이 묻어난다. ‘선비는 얼어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모두 꿋꿋한 선비정신을 보석으로 삼아, 지금의 어려운 난국을 극복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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