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간인의 깊은 혜안··· 일제에 맞서 전주대사습놀이의 맥을 살리다

<명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백낙중 선생의 고택 '전주 학인당'> 최병호 기자l승인2016.12.21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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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에 풍경소리가 더해진다. 각박한 세상살이 할퀴어지고 헐뜯긴 마음이 바람을 더한 은은한 풍경소리에 치유된다. 마치 깊은 산속 조용한 외딴 사찰에 온 기분이다.
한 때는 구수한 판소리 다섯마당이 채워져 있던, 전주한옥마을의 터주 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고택 ‘학인당’. 이 집은 앞으로는 전주천이 감아 돌고, 그 너머로 승암산, 남고산성, 곤지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지세를 갖추고 있다. 학인당은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행복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어 다시 찾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공간이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전주시 교동에 위치한 학인당(學忍堂). 전주한옥마을에서는 가장 오래된 고택으로, 민간주택 중에서는 유일하게 문화재(전라북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돼 있다.
이 집은 조선조 성리학자 조광자의 제자이며, 조선조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꼽혔던 휴암 백인걸의 11세손인 인재 백낙중 선생이 지은 건물이다. 1905년 당시 백미 8000가마의 공사비와 4280명의 공사인원을 투입해 1908년 완공했다. 궁중 건축양식을 사용한 학인당은 조선 26대 왕인 고종이 파견한 도편수와 대목장 등 명인의 손길이 배어있다. 무려 99칸, 2000여평의 넓었던 한옥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현재는 불과 520평 규모의 한옥 7채만이 남아 있다.
학인당의 본채 규모는 기둥 안으로만 따지면 67평이다. 처마 밑으로 환산하면 76평에 달한다.  칸수로는 28칸 반의 규모로 보통 한옥 3채 크기다. 건물의 높이도 이층집 규모로 지붕을 떠받치는 ‘도리’가 일곱 개여서 ‘칠량(七樑)집’이라고 한다. 칠량집은 궁궐의 전각이나 사찰의 대웅전에 사용되는 양식이다.
또한,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가 설치됐으며, 복도는 마루로 되어 있다. ‘ㄱ’자 형태의 본채를 돌아다니려면 복도를 따라 다녀야 한다. 집 내부에는 유리로 만든 여닫이문, 서재, 세면장, 목욕탕, 화장실을 갖췄으며, 전기 시설과 수도 시설도 도입했다. 외양은 궁궐 양식의 한옥이지만, 내부는 당시 최신식의 시설을 갖춘 개화기의 개량형 주택인 셈이다.
벽지도 두껍다. 학인당의 벽지는 여덟 번을 겹쳐 발라 ‘팔배접’이라고 부른다. 팔배접은 방음이 잘되고 방습·방풍 효과가 우수하다.
목재도 백두산에서 나온 홍송(紅松)을 압록강에서 서해안을 따라 군산항으로 운반해 사용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판소리 공연장
이렇듯 학인당이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이유는 판소리 공연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특히 주 공연장인 본채의 높이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소리 공연은 본채의 대청마루에서 이뤄졌다. 대청을 기준으로 동쪽 방 1개, 서쪽 방 2개 등 3개의 방문을 모두 들어 올리거나 철거하고 문지방을 분리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로써 대청마루 좌우가 전부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며, 대청의 남북에 있는 유리문까지 철거하면 툇마루까지 하나의 공간이 된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40평 규모의 공간이 확보되며, 이 공간에서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인원은 100여명에 달한다. 학인당 본채가 100여명의 청중이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한옥 극장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당시 팔도의 소리꾼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판소리를 좋아해 소리꾼들은 대원군 앞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는 게 최고의 출세로 알았다고 한다. 이러한 소리꾼은 전라도에서 공급됐으며, 그 실력을 검증받았던 방법이 ‘전주대사습놀이’였다. 하지만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후 관청에서 전주대사습놀이를 진행할 수 없게 되자, 민간에서 맥을 이어갔다. 그 민간이 바로 백낙중 선생으로, 당시 학인당 본채에서는 내로라는 명창인 임방울, 박녹주, 박초월, 김소희 등이 수시로 공연을 했다. 
또한, 광복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이 전주를 찾았을 때 묵었다는 등 정부요인과 각계 유명인사들이 묵었던 최고의 영빈관이었으며, 1960년대에는 소리꾼은 물론 서예가, 화가, 문필가 등이 모여 드는 전주의 문화예술 담론의 공간 역할을 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고택에서의 여유
당초 2000평이 넘는 대저택이었던 학인당은 현재 520평의 대지에 본채와 행랑사랑채, 솟을대문, 별채만이 남아 있다.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어느 저택보다도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학인당 몇 곳은 본래의 모습과 다르다. 건너방 누무라 중 북쪽 끝 한 칸은 원래 화장실이었고, 누마루 밖 쪽마루는 좌측 끝방 앞에 설치돼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마당 한 가운데는 원래 우물이 있었으나 혈의 자리라고 해서 없애지 않고 물이 나오는 곳까지 계단을 만들어 놨다. 우물을 중심으로 한 정원은 위에서 보면 한반도를 뒤집어 놓은 형태다.
이처럼 역사적이고,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는 학인당은 ‘YMCA 야구단’과 ‘가비’, ‘런닝맨’ 등 촬영지로 각광받았으며, 현재는 시민과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는 영빈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선말 전통 건축 기술이자, 궁중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새기고, 판소리에 얽힌 이야기 등 고택을 둘러싼 이야기 속에 더욱 더 각별하고 의미가 깊을 것이다.
/최병호기자·hoya@


최병호 기자  cbh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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