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역사 호남상징 회복··· 전주의 자존심 세운다

<신년특집: 전라감영 첫 삽 뜨다> 이승석 기자l승인2017.01.01l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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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주의 영광이자 조선시대 호남의 상징이었던 전라감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날이 멀지 않았다. 희망의 2017 한해는 전라감영 복원이 더욱 힘차게 진행될 것이다. 지난 2016년 6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전라감영 복원 예정지 전체면적(16,117㎡) 중 지하층이 있는 경찰청동 등 총 9,115㎡ 부지의 발굴조사를 마치고 전라감영의 핵심인 선화당과 내아, 관풍각, 내삼문, 비장청터 등 건라감영의 주요 건물터를 확인했다. 올해는 전라감영 복원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 천년역사 이어온 전북·전남·제주의 행정·군사 중심, 전라감영
전라감영은 현재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제주도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전라감영은 다른 도의 감영과는 달리 조선 500년간을 같은 장소에 있었고, 감영의 규모나 건물 규모가 조선조 감영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감영 내의 건물 배치는 문헌을 통해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있다. 또한 조선 태조의 관향이 전주였다는 사실 때문에 객사와 감영, 부영 배치의 조화뿐만 아니라 경기전, 조경묘가 적절한 공간 배치를 이루고 조성되었기에 전라감영은 다른 감영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라감영은 조선조 전라도의 치소이자 수부이며 호남의 상징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조선 감영을 대표할 수 있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전라감영이 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산실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전라감영 터이자 전라북도 도청사 터인 이곳은 조선왕조 500년 간 호남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이었고 그 이후 근대화의 과정에도 100여 년간 전라북도 행정의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이 터는 보존되고 기억되어야 할 장소이다.
여기에 의미를 한가지 더 부여하자면, 민중권력의 출발지라 할 수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호남 일대에서 봉기한 농민군은 전라감영을 점령하였다. 전봉준은 관찰사와의 담판으로 전라도 일대의 폐정개혁을 담당하는 집강소를 각 군현에 설치하고 그 개혁의 중심기구인 대도소를 전주객사와 감영에 설치하였다. 이로써 봉건왕조에서 억압과 수탈의 대상이었던 농민들이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직접 개혁을 단행하는 한국근대사 초유의 농민권력을 행사하였다. 비록 외국군의 개입으로 개혁을 좌절되었고, 집강소를 통한 농민군의 권력행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농민의 권력행사와 참여의 경험은 커다란 충격이었고 이는 한국근대사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개혁의 중심에 있던 전라감영은 한국근대사에서 최초로 농민권력기구가 설치된 곳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크다.


□ 전주의 구도심과 전통문화관광 중심축으로 전라감영 복원
전라감영은 조선시대의 전라도, 즉 전북과 전남, 제주도를 통괄했던 지방통치기구다. 또, 전라감영은 전라문화 발전의 중심이었다.
전라감영은 조선 전기로부터 전주 한지의 생산력에 힘입어 완판본 전적들을 간행하여 조선의 인쇄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감영 내의 지소와 인청의 존재는 전라감영의 특징적인 요소이다. 인쇄술의 발전과 완판본의 간행은 전라문화의 지식기반을 축적하고 보급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특히, 조선후기에 다양한 완판본 소설과 가사류의 간행으로 판소리의 보급과 함께 민중의식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선자청을 두어 감영에서 부채를 제조함으로써 전주 합죽선을 비롯한 부재 제조기술 발전에 기여하였다.
따라서 전라감영은 전라도 전통문화의 중심이자 민중의식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주 구도심 개발과 전통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복원되어야한다.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단순히 건물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호남제일성으로써 전주의 역사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과 전라도 문화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역사적인 일이며, 건물 복원과 함께 전라도 문화의 거점지를 동시에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전라감영 복원은 한옥마을 외연확장과 원도심 활성화로 이어져
전라감영 복원은 전주 한옥마을과 풍남문, 풍패지관, 걷고싶은 거리를 연결하는 전주 관광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 되고, 전주의 구도심을 활성화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전주시 핵심 관광산업이다.
전라감영은 전주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자,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재창조된다. 현재 전주의 역사적 전통성을 확립하는 방안과 단기적으로는 구도심 활성화라는 이중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전라감영 복원은 진행되고 있다. 한옥마을의 외연 확장과 원도심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전라감영 복원은 한옥마을 관광효과를 극대화하고, 현재 속도를 내고 있는 천년의 역사가 축적된 옛 4대문안 역사 도심 회복과도 맞물려 있다.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문화자원을 간직한 4대문안이 복원되면 한옥마을로 국한된 전주관광 영역이 넓어져 침체된 원도심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전라감영 복원의 기틀, 철저한 고증으로 원형 복원 확실
지난 11월 전라감영 복원에 속도를 낼 전라감영지 발굴조사가 마무리되었다. 전라감영의 중요 건물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전라감영 발굴조사 결과를 살펴본다.
선화당의 위치를 확인한 첫 번째 자료는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각각 지난 1928년과 1937년에 1/300 축적으로 그려진 전라북도 구도청사 도면으로, 이 자료들은 전라북도에서 건물의 신축 또는 증축 공사를 위해 예산을 신청한 문서철에 들어 있는 자료이다. 시기를 달리하는 두 장의 일제강점기 구도청사 도면에는 선화당이 표기돼 있어 선화당의 위치를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됐다.
먼저, 지난 1928년 그려진 구도청사 도면에는 감사 부친의 처소인 관풍각(觀風閣)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그려져 있어 관풍각의 위치를 확인할 때 중요한 자료가 됐다. 또한, 1937년 구도청사 도면에는 산업장려관(옛 전라북도의회) 건물이 있어 현재 구도청사 부지에서 선화당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산업장려관 건물이 건물 앞부분 좌우로는 증축됐지만 전후좌우로는 증축이 이뤄지지 않아 산업장려관의 좌측 하단부 모서리가 선화당의 위치를 확인하는 기준점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을 토대로 현 부지 내에서 선화당의 위치를 측량한 결과, 기준점이 되는 산업장려관으로부터 남쪽으로 13.6m 이격되어 있고, 크기는 정면으로 21.3m에 달하고, 측면은 10.4m로 확인됐다. 전주시와 연구원 등은 이러한 내용을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재확인했으며, 발굴조사 현장에서 일제강점기 도면과 대조하여 전문가 검증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또한 선화당 위치를 확인한 두 번째 자료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우물과 내삼문에서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인도시설(답도)이다. 일제강점기 도면에 표기된 우물의 위치가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나게 되면서 선화당의 위치를 확정하는 자료로 작용했다. 이 발굴조사에서 회화나무 인근 고려시대 건물터 1개소와 선화당 추정터 남동쪽 1개소 등 2개의 우물이 조사됐으며, 이 중 선화당 남동쪽에 위치한 우물은 1928년과 1937년 도면에도 표기돼 있어 선화당의 위치를 확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점이 됐다. 실제로 산업장려관 좌측 하단부 모서리를 기준으로 도면과 실제거리를 확인해 본 결과 41.1m로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1928년과 1937년의 도면에 표기된 일제강점기 도청사 건물의 기단부 전면과 후면이 조사됐는데, 이를 실측한 결과 선화당 위치가 정확히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내삼문과 6방 비장의 사무소인 비장청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적심시설이 발굴됐다. 발굴된 내삼문의 적심시설들은 고지도에 표기된 것처럼 선화당과 선화당 남쪽에 있는 인도시설과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내삼문 동쪽으로는 적심시설과 아궁이 등 조선시대 건물터가 확인돼 고지도에 나와 있는 건물의 배치양상으로 보아 비장청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아울러,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선화당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내삼문에서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인도시설의 일부가 선화당 추정터의 남쪽에서 발굴됐다. 또, 선화당 북쪽에서는 전라감사 가족의 처소인 내아의 기단석과 부석시설, 연도부 등이 발견되고, 선화당 동쪽에서는 지난 1928년 도면에 표기된 관풍각과 관련된 기단석이 각각 발견되기도 했다.


□ 전주정신이 살아있는 전라감영의 미래복원될 전라감영에는 공간과 시간, 건축과 전주정신을 녹여 건물 하나 하나에 세워 놓을 방침이다. 또, 전라감영은 전주시민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이 되고, 전주의 위대한 번영을 알리는 핵심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문화재 복원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전주 심장부에 자리하고 있는 전라감영을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건축물 복원이 아닌 전라감영에 담긴 역사적 가치와 문화, 자존감 회복을 통해 ‘전통문화중심도시 전주’의 옛 영광을 복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의 결과물로 전라감영은 전주시민 곁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승석 기자  2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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