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유독 강자에게는 허리를 굽실거리고 약자에게는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적으로 보면 뭔가 보상받으려는 딱한 심리가 숨어 있지만 그로 인한 주변의 고통은 꽤 심하다. 경제적 피해도 있고 정신적 피해는 더 심각한 편이다. 이렇게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부류들의 행태를 요즘 갑질이라고 한다.
  갑은 천간 10개 중 맨 처음에 등장한다. 으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병정무기경신임계가 뒤를 잇는데 갑이 대장인 셈이다. 갑이 여기서 튀어나온 것은 계약법상 갑을관계라는 데서 비롯됐다. 원래는 독립적인 개인이 자유의사에 의해 대등한 자격으로 맺는 게 계약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갑이 횡포를 부리기 쉬운 구조다. 질은 짓거리와도 통하는 데 하는 일이 하도 같잖아서 비하하는 속뜻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갑질은 이해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가 이를 이용해 남에게 공정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어느 항공사 오너 딸이자 임원은 승무원을 겁박해 이미 출발한 항공기를 되돌아가게 했다. 아주 사소한 불만 때문이었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안내요원을 무릎 꿇리고 욕설을 퍼부은 진상고객도 있었다.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고 폭행을 일삼은 교수도 지탄을 받았다. 대기업이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단가를 후려치는 등 온갖 불공정 행위를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갑질이 소수 몇몇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게 갑질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갑질문화가 끝없이 만연하면서 차라리 당연한 일처럼 비치게 된 것이다.
  며칠 전 검찰은 갑질 논란으로 사회를 들쑤셔놓은 재벌 3세 두 명에 대해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했다. 대상자는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정일선 현대BNG 스틸 사장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운전기사들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하거나 근로시간을 멋대로 연장한 혐의다. 심지어는 피해기사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강요하기까지 했다. 전형적인 갑질이다. 검찰은 죄질은 나쁘지만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해 약식 기소했다고 밝혔다.
  성서에는 ‘당신이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나온다. 갑질에 빠진 이들이 새겨야 할 명구다. 역지사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약자에 대해 좀 더 배려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갑이면서 을이다. 여기서는 갑이지만 저기로 가면 을일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갑질문화에 전염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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