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1차 대전 패배 후유증은 비참했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데다 산업시설은 다 파괴되고 영토마저 크게 축소됐다.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국민들은 이 암담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 때 나타난 게 바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다. 나치당은 독일인들의 뼈저린 고통과 분노를 잘 이용했다.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을 앞세우면서 편협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국수주의를 표방했다. 대중들은 열광했고 결국 나치당은 정권을 쟁취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는 바로 이 나치당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얼룩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인들은 전쟁도 모자라 반유태주의라는 기치 아래 수백만 유태인을 학살했다. 그리고 다시 독일은 패전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다행히 서방의 도움으로 오늘날 부국을 건설했지만 나치즘은 독일인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나치당이 이용한 국수주의는 자민족 중심주의 혹은 극단적 국가주의라고도 불린다. 자국민의 우수성을 고집하되 타민족이나 타국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고 초월적인 성격을 지닌다. 자신들이 가진 민족성, 역사와 전통, 문화, 정치체제만이 가장 우월하다는 믿음이다. 이 국수주의는 대내적으로는 억압을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침략주의를 유발해 큰 불행을 낳는 요인이 된다.

물론 나치당만이 아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 등장한 국수보존사상 혹은 군국주의도 모두 국수주의적 성향을 띤다. 프랑스 나폴레옹 치하에서 나온 쇼비니즘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과 러시아, 터키 등지에서 이 국수주의가 세를 얻고 있다. 또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마저 이런 경향을 띤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런 흐름에 대해 전 세계에 국수주의가 퍼져 과거의 영광을 강조하는 추세라며 국민들을 자극하고 외국인에 대한 적대성을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고 경계했다. 신문은 그 증좌로 트럼프의 캐치프레이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중국 시진핑 주석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약속, 터키 메르도안 대통령의 오스만 제국의 영광 추구를 들었다.

국수주의는 글로벌화 하는 큰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이웃문화의 장단점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자신만 최고라는 편협한 감정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느 나라나 국수주의 유혹에 빠질 염려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역시 민족주의 열정이 뜨거운 나라인 만큼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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