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부터 규장각 검서관까지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 하나의 궤로 집약됐다. ‘나랏글’이다.

서철원이 펴낸 인문소설 <혼,백>(인사이트)은 조선의 문장 및 문체를 통해 역사와 인문학적 요소를 바라보는 구조로 한국 역사소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인문소설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잘 알려진 역사나 인물보다는 비교적 생소한 기록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그들의 업무와 견해, 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 및 묘사해 흥미를 더한다.

‘사관은 임금의 언행을 실록으로 남기고 검서관은 임금의 일상을 담은 <일성록>에 주재해야 했으므로 사관과 검서관의 입지는 일맥의 부분이 있었고 상통의 조율도 있었다. 대개 사관의 업무는 기록으로 보았고 검서관의 업무는 일기로 보았다’고 쓰였다.

나라와 시대는 물론 개성과 위엄까지 갖춘 문체들을 좇다보면 추상적 어구와 말 바꾸기가 난무하는 국정농단 사태 속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더불어 문체의 힘과 중요성을 깨닫는다.

‘조선의 문체는 저 높고 광활한 문장의 기슭, 옛 조선에서 고구려 지나 고려에 이르는 거대 광토를 붉게 물들이며 일어설 것이옵니다’라고 하자 ‘나라와 나라는 잇는 것이 역사이다. 역사는 문체로 일구고 문장으로 깃들 때 일어선다. 역사의 강고함이란 완고함과 같은 것이다’라고 답하는 데서도 엿 볼 수 있다.

책은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와 정약용,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는다. 규장각 각신들의 실록과 검서관들의 기록을 토대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 이해할 수 없는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진실의 역사를 풀어낸다.

역사적 사실보다 주안점을 두는 건 인문학적 요소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요구하는 게 인문학의 본령이라 보고, 임금과 검서관이 충돌했던 부분을 계속해서 다뤄 오늘날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궁극적으로는 잃어버린 나라, 발해에 담긴 민족적 얼과 전통의 계승을 주장한다. 조선후기 규장각 검서관 유득공이 집대성한 ‘발해고’는 국경 너머 청나라 한 곳에 자리 잡은 조선 옛 영토를 기억하고자 ‘발해’의 역사 편입을 조선의 문장으로 언급한다.

이와 관련, 임금과 유득공은 대화를 나누는데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고 그 날이 멀지 않았으니 발해의 중심을 담지 말라던 임금과 그럼에도 계속해서 논변하며 <발해고>를 펴낸 유득공의 입장이 긴장을 극대화한다.

글쓴이는 “허세와 농단을 꿈꾸는 자가 뱉어댄 말의 추상이 이제는 인문의 세상 앞에서 무겁게 사죄해야 할 때다”라며 “문체의 도리를 저버리고 문장의 본색을 감추려하는 자들 편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높은지를 가늠하는 일은 언제나 황망하다. 각자가 살아온 내력이 말해줄 거고 추구하는 방식에서 극명히 분할될 것”이라고 취지를 전했다.

경남 함양 출생으로 2013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들만의 전설> <호모 아나키스트> <추림> <칼새> <고놈, 산갈치> <장헌>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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