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봉일까, 왕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둘 다 맞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소비자를 대할 때 때로는 왕으로 대접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봉으로 한 몫 챙기는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이른바 ‘호갱님’으로 고객을 대하는 경우도 잦다.

먼저 왕으로 대우하는 입장을 보자. 이때는 소비자가 시장의 주인이다. 소비자 주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소비자 주권은 생산 종류나 수량을 결정함에 있어 소비자가 행하는 지배적 역할을 뜻한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하는 것은 재화에 대해 화폐로써 투표하는 행위라는 차원이다. 당연히 소비자로부터 선택 받지 못한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것이 마치 정치적 민주주의와 닮았다는 이야기다.

시장경제 주창자 미제스가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지난 시대 노예와 농노, 그리고 빈민과 거지 계층이 현대의 구매 대중이 되었으며, 이들의 선호를 좇아 기업에서는 생산 활동을 해야 한다. 그들은 ‘언제나 옳은’ 고객들이다. … 돈이 투표권을 나타내고 있으며 매일 매일 국민투표를 통해 소비자들은 누가 공장과 가게와 농장을 소유하고 운영해야 하는 지 결정한다. 물적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는 소비자 주권에 의해 확인 또는 취하되는 사회적 기능이다.”

미제스의 말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한 마디로 소비자가 주인이라는 것이다.

반면 소비자가 봉이 되는 경우는 재화의 종류나 양이 너무 많아 소비자들이 헷갈리거나 독과점 기업의 가격 농단, 광고와 정보 불균형 등의 이유로 발생한다.

최근 이랜드 그룹이 아르바이트 사원의 임금을 떼어먹었다가 호된 여론의 질책을 받고 있다. 이랜드는 아르바이트 사원 4만여 명에 대한 임금 84억여 원을 체불했다. 또 정규직 사원의 연장근로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이랜드 측은 두 차례나 사과하고 후속 조치를 취했지만 사회적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소비자를 왕으로 모셨다면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할 생각도 못했을 게 분명하다. 불매운동은 소비자 주권의 행사다. 이제 비윤리적인 기업은 소비자의 심판에 따라 시장에서 쫓겨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만 골라 사는 차원을 넘어 착한 기업 제품은 구매하고 나쁜 기업 제품은 외면하는 데까지로 나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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