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경제통상진흥원 홍용웅 원장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송구영신, 문자 그대로 올해는 지난해의 나쁜 기억을 떨치고 새 출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옛일을 망각 내지 외면함으로써가 아니라, 사회 요소요소를 좀먹고 있는 적폐를 일소함으로써 말이다. 지난해 우리는 ‘비선실세, 세월호 7시간, 부정입학, 불법시술’ 같은 해괴하고 낯 뜨건 의혹들로 세계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죽은 라스푸틴까지 부활할 지경으로 말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시국이 하루빨리 민의에 맞게 수습되고, 엄청난 실망과 충격이 초래한 민심의 내상이 시나브로 아물길 기원한다.
  새해에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단연 경제다. 모든 경제주체가 합심하여 경제 살리기에 진력해도 모자랄 판에 아까운 골든타임을 허송하였다. 절대다수의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끝 모를 불경기의 심연에서 나날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내 판로는 물론 수출도 험로다. IMF 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잘 이겨 내는가 싶더니 미증유의 국정농단이라는 핵 펀치를 맞고 그로기상태에 몰렸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당면한 진짜 적은 불경기도, 정부의 무능도, 비선의 발호도 아니다. 그것들이 상승 작용하여 빚어낸 괴물, 즉 불신이다.
  우리 사회엔 불신이 팽배해 있다. 국민은 위정자를 믿지 않는다. 학생은 선생을, 직원은 임원을 안 믿는다. 그리고 젊은이는 기성세대를 불신, 아니 증오한다.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불신이 오히려 가치판단의 잣대가 된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비정상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반칙사회에서의 삶은 과민하고 피곤하다. 매사 부단히 잔머리를 굴려야 살아남는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정당한 보상마저 의심되며, 사사건건 그 파장이 자기 검열된다. 국민들은 국회청문회에서 고위인사들은 물론, 학자, 의사, 군인에 이르기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모습을 뚜렷이 보았다. 이는 대한민국이 ‘불신의 바다’에 불시착했음을 웅변한 것이다. 세월호가 3백여 고귀한 인명과 함께 맹골수도에 침몰하면서 정권의 양심 또한 불신의 바다에 침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괴테가 25세 때 쓴 ‘젊은 베르터의 슬픔’에는, 연애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뜻밖의 대목이 나온다. “얼마나 많은 제왕들이 장관에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장관들이 비서에게 지배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제일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게 통찰하고 남들을 손아귀에 장악하여 스스로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힘과 정열을 집중시킬 수 있는 수완과 지략을 갖춘 사람이다.” 독일의 대문호는 2백여 년 후 한국 땅에서 역대 급 비선실세가 나올 것을 미리 안 모양이다. 
  불신이 가득한 이 시대에 홀로 아니라고 말할 사람 있어 광야에서 고함친들 누가 경청할 것인가? 지도자도, 리더십도 실종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국정농단 잔당들의 음험한   국면전환 기도를 국민들이 간파하고 촛불광장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어느 잘난 관료가 ‘개돼지’로 폄하한 민중의 힘이 유일한 시대의 양심이자 미래의 등불이 된 것이다.
  목하 가장 시급한 일은 위대한 국민의 힘을 제대로 읽고 실현할 대의기능의 작동이다. 민의에 부응한 정치와 사법이  정의롭게 가동되어 조속히 신뢰회복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 도상에서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속속 완수돼야 한다. 그래야 민생도, 경제도, 국가도 그리고 개인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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