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온화하고 얌전하였으며 지조가 정결하고 거동이 조용하였고, 일을 처리하는데 편안하고 자상했다. 말이 적고 행실을 삼가고 또 겸손하

였다”
  조선 중기의 명신 이율곡이 자신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에 대해 남긴 기록이다. 흔히 ‘한국의 어머니’라고 칭송되는 신사임당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또 자신의 어머니와 시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에 대한 대체적인 인식은 이렇다. 즉 몸가짐이 정숙했고 자식들

을 잘 교육하였으며 남편에게 올바른 길을 가도록 내조했다. 또 시부모와 친정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극진해 잘 모셨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현모양처 상이다.
  그녀에게는 또 다른 면모도 있었다. 바로 화가이자 시인이었으며 교양인이었다는 점이다. 신사임당은 선비 가문에 태어나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스스로도 예술과 학문을 사랑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매일 새벽 일어나 글을 읽고 좋은 글이 있으면 집안 곳곳에 붙여 자녀들에게

늘 접하게 했다고 한다. 그녀의 학문 수준은 대단해서 남편 이원수와의 토론에서 늘 우위에 서곤 했다.
  특히 화가로서 자질이 빼어나 당대 왕실과 선비계층 그리고 서민들까지 그녀의 그림 솜씨에 매료됐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인 신사

임당은 7살 때 아버지가 건네준 안견의 그림을 본 떠 그린 그림이 원작에 버금가 경탄을 자아냈다. 아직 10대일 때 꽈리나무에 메뚜기 한 마리

가 앉아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 닭이 진짜인줄 알고 쪼아 종이에 구멍을 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요즘 문화계에 신사임당 열풍이 불고 있다. 한 방송국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방영을 시작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한편으로 미술

관에서는 ‘사임당, 그녀의 화원’이라는 주제의 기획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또 출판계에도 평전과 학술서, 소설 등이 잇따라 출간돼 화제를 뿌

리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사임당의 대표작 ‘초충도’라는 그림이 대부분 위작이라는 학계의 주장이 나와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신사임당은 5만원권 지폐의 인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경외의 대상이다. 하지만 논란도 없지 않다. 그녀의 현모양처 상이 사실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보다는 화가이자 문인으로서의 면모가 더 뚜렷했고 시쳇말로 워킹맘이었다는 견해다. 어찌

됐든 그녀는 슬기로운 어머니와 아내 역할 그리고 예술과 학문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다 이룬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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