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서부터 서기 562년까지 존속한 연맹체 왕국이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와 달리 느슨한 연맹이었기에 나라로서 취급받지 못한 구석이 있다. 역사 기록으로 보아도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간단히 언급돼 있을 뿐이다. 그만큼 가야 역사의 복원에는 애로가 뒤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는 하지만 다른 삼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강성한 나라였다. 그 영토는 경상남도 대부분과 경북 일부 그리고 전라도 쪽 금강 상류 등을 아우르고 있었다. 원래는 변한 12국에서 발전했는데 5세기 전성기 때는 22개의 소국이 연맹체를 형성하고 세력을 과시했다. 22개 소국 가운데 영남이 16개국 그리고 호남 쪽이 6개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야는 후기로 가면서 점차 분열해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하여 맹주국 역할을 하던 금관가야는 532년에, 뒤를 이은 후기 맹주국 대가야는 562년에 각각 멸망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가야의 영역 가운데 호남 쪽이 최근 주목 대상이다. 전북에 해당되는 곳으로는 두 곳인데 바로 운봉 가야와 장수 가야이다. 우선 운봉 가야는 5세기와 6세기에 걸쳐 존속한 소국으로 가야와 백제의 문물 교류 관문역할을 했다. 현재 30여개소의 제철 유적과 중대형 고분 수십 개가 확인된 상태다.
  진안고원에 위치한 장수가야는 5세기 경 등장했다가 6세기 백제에 복속된 소국이다. 역시 가야계 고분 200여기가 발굴됐고 40여개의 제철 유적 그리고 80여개의 봉수가 발견된 상황이다. 출토 유물로 미루어 꽤 큰 나라였던 게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장수 가야의 영역인 장수읍 동촌리 가야 고분이 최근 전북도 기념물 132호로 지정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왕릉급 고분 80여기가 몰려 있다. 왕은 아닐지라도 그 수장의 세력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3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졌고 수혈식 석곽묘와 다양한 유물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수와 운봉 등 전북 지역에 위치한 가야 유적들은 그 의미가 아주 깊다. 이들 지역에서 융성했던 소국들은 백제와의 교섭에서 중추적 위치를 차지 했을뿐더러 철의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였다. 나아가 수준 높은 가야 문화의 한 축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문헌에는 전혀 언급이 없어 아직은 신비에 가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전북도 기념물 지정을 계기로 그 실체 복원에 힘을 써 전북의 문화자원으로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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