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음식이 어느새 허례허식이 됐더군요.”

혼례음식전문가 고 박복자 여사의 딸 차경옥(55)이 언니들과 함께 혼례음식공간 ‘백년해로 행복한 혼례음식-차연’을 열게 된 계기다.

17일 차연에서 만난 차 씨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조리기능장을 비롯한 관련 자격증 15종을 취득하고 전주시청 한스타일관광과 한식팀 직원으로 지난 8년 간 근무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요리와 음식이 일상인 셈이다.

“어머니이자 스승이셨어요. 전주 솜씨장이라 소문나 전국 각지에 불려 다니며 일하셨죠. 열흘이고 한 달이고 안 오실 때도 있었어요. 문어새김 같은 정교한 작업을 정말 잘 하셨거든요. ‘내가 이만큼 가르쳐주면 누군가 덧붙여 발전된다’며 전수에 힘쓰셨고, 좋은 기운이 깃들어야 한다며 제 값을 치르고 산 최상의 재료를 고집하셨습니다.”

그 때만 해도 어머니의 철학과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고 따를 마음도 없었다는 차 씨는 1997년 직업훈련교사로 일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 분이 걸으셨던 길이 중요하단 걸 깨닫고 가업을 잇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혼례음식에 대한 이해가 낮은 건 물론이고 불필요한 옛것이란 인식이 강해서다. “혼례음식은 인간의 통과의례 시 준비하는 음식 중에서도 대표적입니다. 신부가 신랑집에 가져가는 첫 번째 음식으로 친정어머니는 딸의 백년해로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 집안의 맛, 간, 모양새를 파악해 가르칩니다. 집안 간 음식문화교류인 셈이죠. 음식 하나하나도 무의미한 게 없어요.”

시어머니의 치마폭을 연상시키는 육포는 며느리의 허물을 감싼다는 뜻이다. 밤과 대추는 자손 번성을, 찰떡은 입막음을, 구절판은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총 9년만 참으면 시댁 식구가 됨을 상징한다.

전주의 경우 여느 곳보다 가짓수가 많고 화려한데 폐백음식(혼인 후 시부모님 처음 뵐 때)과 이바지음식(사돈댁에 보낼 때)을 한 번에 준비하기 때문. 색색의 한지를 견과류와 함께 장식한 사지꽂이는 종이가 발달한 우리 지역만의 특별한 음식이다.

“귀한 문화유산이고 한식의 한 부분이지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사는 이들은 사치라며, 만드는 이들은 돈이 안 되고 손이 많이 간다며…저마다의 이유로 말이죠. 과시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이고 의미 있는 걸 시대에 맞게 준비하면 어떨까요.”

2월 둘째 주 개관한 공간 ‘차연(전주시 완산구 서학동예술마을 내 서학로 3길 71번지)’에서는 꿈을 이뤄간다. 어머니의 건강한 가치관과 빼어난 음식솜씨를 이어받은 언니 선옥 계옥 희옥 양옥 씨와 함께 ‘차씨 가문의 잔치’라는 이름을 걸고 △혼례음식△한식△교육 및 체험을 진행한다. 조리실, 체험실, 제조실, 홀을 꾸려 혼례음식을 비롯한 한식의 대중화, 상품화, 현대화를 모색한다.

“우리 세대는 과거와 미래의 중간다리로서 전통을 지키되 현대감각을 더해가야 합니다. 관련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계보를 만들어야 하며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유도해야 합니다. 음식의 뿌리가 깊어질 수 있도록 이곳에서 시도할 겁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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