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불확실하면 생각도 복잡해진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달려있다(Everything depends upon everything)’는 표현처럼, 삶의 순간마다 마주치는 사건사고를 영향하는 변수는 너무나 많다. 물리적 변수도 부지기수인데 심리적 변수까지 가세한다. 거기에 사회에 만연한 불신이라는 요소까지 더하면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생각은 하나의 나무(tree)를 형성하고, 우리 마음속은 온통 인과관계의 나무들로 울창한 삼림을 이룬다. 이 숲속 미로에서 길 잃은 우리는 때로 울분을, 때론 설움을 곱씹으며 수많은 불면의 밤을 밝히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면 누구나 의심과 분노 그리고 질시의 포로가 되고 마니, 비관주의는 그렇게 생기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 완전히 썩어 무너지진 않았지만, 부패의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원칙을 지켜 손해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엄존하고 있으며, 돈이 사람보다 우선인 천민자본이 득세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구촌 여기선 비만이, 저기선 기아가 병이다. 굶다 지쳐 차라리 초연해진 어린 영혼들의 눈망울이 밤하늘의 별처럼 슬프다. 신의 지상명령이 사랑이라면서, 그 실천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종교의 모습도 모순이다.

헛똑똑이 인간들은 여느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허구한 날 지엽말단의 이유로 싸우느라 영일이 없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뭐가 그리 복잡한지 핑계만 수만 가지다. 화끈하게 만나서 철야 끝장토론이라도 하면 될 일을 이리저리 회피한다. 때와 곳, 의전이 무슨 대순가?

하기야 국헌준수를 서약한 지도자가 헌법 수호기관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이 땅에서 다른 나라 흉볼 것도 없다. 무엇이 그리 복잡한가? 개탄 또 개탄한다. 인정할 것 인정하고, 밝힐 것은 밝히고, 잘못은 사과하고, 처벌 받을 건 받고, 그리고 새 출발하면 될 것을. 오히려 활로를 제 손으로 차단하는 우를 범하는 까닭을 정말 모르겠다.

인간이 평생 동안 맺는 관계는 무수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복잡한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만수산 드렁 칡 얽히듯 관계가 무한정 번지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일은 아니다. 관계의 확장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삶의 방향과 결실을 고려하여 매니지먼트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핵심 위주로 간명하게 생각하고, ‘뭣이 중한지’알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컴의 면도날’은 영국 오컴 출신의 한 신학자의 주장이다.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덧붙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이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복잡한 상념 속에서 헤매는 우리 현대인들은 한번쯤 경청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녀의 수학성적이 나쁜 경우, ①아이가 공부를 안 했다, ②선생님이 아이를 미워해 일부러 점수를 안줬다, 이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①이 진리일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정이 없고 단순하니까.

이제부터 우리 삶에서 번다한 가정들을 과감히 제거해보자. 구름처럼 일어나는 번뇌들을 면도날로 잘라버리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자. 그리고 문제를 정면승부하자./홍용웅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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