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건이 후대 왕에게 남긴 훈요십조에는 이상한 구절이 있다. “차령 이남의 물은 모두 산세와 어울리지 않고 엇갈리게 흐르니 차령 이남의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차령 이남이라면 충청 일부와 전라도를 일컫는 것이다. 이를 놓고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일단 왕건이 견훤이

전라도 땅에 세운 후백제와의 쟁패 과정에서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을 높은 지위에 쓰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반면 훈요십조가 후세의 위작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 근거는 왕건 스스로 전라도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중용했으며 후대 왕들도

훈요십조를 지키지 않았다는 데 있다. 또 풍수지리설 역시 그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지적되는 양상이다.
  어쨌든 훈요십조의 이 조항은 역사적으로 전라도 차별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조선조에 이르면 전라도 차별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조 때 기축옥사 이후 다시 전라도 선비의 출세 길이 막히고 말았다. 기

축옥사는 전주 출신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 해서 무려 1000여명에 이르는 선비들이 목숨을 잃은 참화다. 정여립과 관련을 맺은 호남 지방 사림

의 인사들이 붙잡혀가 수난을 당한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전라도 차별의 시발점이 됐다. 후일 억울한 모함이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오죽하면 살아남은 선비들 사이에는 ‘전라도에서 인재가 나려면 앞으로 40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이후 전라도 차별 시비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온존해 내려오고 있다. 현대정치사에서는 호남과 영남의 지역 갈등이 키워드가 되고 말았다.
  전북을 비롯해 광주, 전남 지자체장들이 전라도 정도 천년 기념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합의 했다고 한다. 지난 29일 나주에 모인 3개 광역단체

장들은 내년 10월이 전라도라는 이름이 만들어진지 1000년이 되는 해라며 이에 맞춰 기념일을 제정하고 7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 중에는 전라도 이미지 개선 사업이 포함돼 있다. 즉 역사적으로 왜곡된 전라도 관련 내용들을 바로 잡아 이미지를 개선하고 지역

정체성을 회복하며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내용이다.
  옳은 일이다. 사실 전라도는 역사적으로 백제 멸망 이후 권력의 핵심에서 늘 벗어나 있었다. 그 탓인지 문헌에는 하시와 비방성 기록이 적지

않다. 따라서 차제에 이를 바로잡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이미지를 세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멋과 맛, 순후한 인심 등 내놓을 게 어디

한 두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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