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흙을 안보의 개념에서 다뤄야 한다는 취지로 2015년을 세계 흙의 해로 제정했고, 12월 5일을 세계 흙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는 3월 11일을 대한민국 흙의 날로 제정했다. 3월11일은 천(天)·지(地)·인(人)과 농업·농촌·농민의 ‘3’과 흙 토(土 = 十一, 11)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UN은 1992년 제47차 총회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물 부족과 수질오염을 방지하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3월 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매년 7월 1일 '물의 날' 행사를 개최하다가 UN의 요청으로 1995년부터 3월 22일로 '물의 날'을 변경했다. UN과 우리 모두 흙과 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이다.

우리들은 흙을 함부로 다루다가 많은 재난을 자초한 경험이 있다. 서울시청 인근 흙을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결과, 2010년 광화문 침수피해를 겪었고, 우면산을 함부로 개발했다가 2011년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지하공사를 잘못해 도로가 가라앉는 싱크홀 문제에도 봉착하고 있다.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발밑의 흙이 대규모 토사로 달려들었고, 도로가 내려가는 아찔한 기억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흙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재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몬순아시아 기후대에 속한 우리나라는 여름철에 비가 집중해서 내리고 가을, 겨울, 봄에는 비가 적었다. 이런 기후조건이었기에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동안 논에서 벼를 기르면서 살아온 것이다. ‘겨울에 눈이 많으면 풍년이 온다’는 말도 봄철 농업용수가 많이 확보됐다는 것을 나타낸다.

흙은 빗물을 머금어 지하수를 보충하고, 생물이 잘 자라는데 필요한 수분을 공급해 준다. 따라서 흙을 함부로 다루면 빗물을 담을 물그릇을 줄이는 행위가 된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가 있고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가 있는 태백지역에서 2009년 극심한 물 부족현상이 발생했다. 필자의 연구결과는 가뭄피해를 겪은 태백시는 인근 영월군, 봉화군 대비 논 면적 비율과 인구 당 강수량이 가장 적은 반면, 불투수 대지면적은 가장 넓었다. 다시 말하면, 태백시의 강수량은 적지 않았으나 상주인구와 유동인구, 개발면적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가뭄 극심화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논 1㏊가 아스팔트로 덮여 불투수층(不透水層)으로 바뀌면 연간 3,865㎥의 지하수가 보충돼야 할 기반이 파괴돼 결과적으로 지하수자원을 고갈시키게 된다.

빗물이 어떻게 흙과 만나느냐에 따라 맑은 물도 나오지만, 반대로 흙탕물을 만들기도 한다. 마른 들녘에 봄비가 내리면 대지를 적시고 만물을 소생하게 해주지만, 급하게 모여진 물 표면의 흙을 파헤치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흙탕물과 수마(水魔)의 피해를 겪게 된다. 사람의 사이도 무슨 상황에서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흙을 가꾸느냐에 따라 빗물과 흙의 사이는 다양하게 변화한다. 흙과 물의 잘못된 만남으로 인한 수마(水魔)는 인명피해와 국토 황폐화를 일으킨다.

우리가 가볍게 여기는 흙탕물도 비옥한 양분을 없애고 땅을 산성화시키며, 호소와 하천 준설과 수질정화에 비용을 유발시킨다. 특히 아스팔트위에 비가 내리면 물이 빠르게 모여 토사까지 깎아낸다. 건강하지 않은 흙과 만난 물은 생태계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건강한 흙 위에 내리는 비는 식물에게 흡수되고 물질순환을 거쳐 우리 인간에게 맑은 물도 선물한다.

흙탕물은 멈추어야 맑은 물이 되듯이 우리 삶도 시계만 바라보며 바삐 갈게 아니라 나침반을 보며 때로는 멈추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본격적인 영농철이자 많은 비가 예고되고 있는 주간이다. 흙과 물이 상생하는 길을 실천하면서 건강한 삶을 구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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