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작업실에서 동면을 취한 미술인들이 파릇파릇한 봄을 맞아 밖으로 나온다. 오랜 시간 꽁꽁 숨어있었던 만큼 기지개는 크고 활기차고, 누군가는 강렬하게 누군가는 따스하게 다가오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기 충분하다. 지역의 걸출한 중견작가 이기홍 류재현이 신작을 가지고 타지로, 해외로 향한다.

 

▲ 이기홍, 중국 상하이 윤 아르떼 기획초대전

이기홍이 지난 8일부터 5월 7일까지 한 달 간 중국 상하이 윤아르떼 기획 초대전으로 ‘바람’을 갖는다. 윤아르떼는 익산 출신 박상윤이 중국 현대미술의 중심지 상하이에 연 한국 작가 전문 화랑으로 전북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다. 2015년 전주 MBC와 한국작가 4인 초대전(류재현 이기홍 이정웅 이주리)를 연 데 이어 이 작가를 또 한 번 초청한다.

그는 민중미술로 기억된다. 민중의 삶이 묻어나는 작품들로 대변자이자 소통망을 자처했고 한국과 한국미술의 역사적 순간을 끊임없이 성찰했다. 더불어 생의 구석진 곳에서, 희미하게나마 들려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붙들고 미술언어로 표현했다.

전시에서는 ‘바람’을 주제로 신작 11점과 구작 10점 총 21점을 선보인다. 그가 말하는 바람은 자연에서 희망으로 향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를 흔들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우리 모두는 어떤 종류의 바람에 노출돼 있고 그것과 맞서며 더 나은 인생을 꿈꾼다는 생각에서다.

투박한 땅 위 뿌리를 단단히 박고 늦가을 비바람에 휘날리는 옥수수, 흔들리고 넘어질 거 같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대나무 숲이 주요 소재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화폭은 특유의 동세와 색감으로 거센 바람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구현한다. 나아가 인생이라는 혹독한 바람에 대처하는 방법은 긍정의 바람(원하다)뿐 임을 말한다.

 

▲ 류재현, 서울 갤러리 가나 개인전

류재현은 전주와 서울, 프랑스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12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갤러리 가나(구 가나아트스페이스)와 20일부터 25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 연이어 개최하고 10월 프랑스 파리 필립즐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질 예정이다.

먼저 서울에서의 개인전 ‘Forest 시간의 흔적’은 전처럼 숲으로 가득하다. 수없이 오르내리며 탐구한 숲과 그 사이 이어진 작은 오솔길, 스며드는 빛, 흔들리는 바람 등 수많은 생명들의 따뜻한 호흡을 보여준다. 어두운 색깔에서 밝은 색깔로, 원경에서 근경으로 작고 부드러운 모필을 덧대고 덧대.

극사실주의에 가까웠던 화폭은 조금씩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어왔고 이번에도 그렇다. 색과 소재의 영역이 넓어졌고 신비로움도 더한다. 짙었던 녹음은 옅은 빛깔까지 아우르고 부수적이거나 등장하지 않던 갈대가 정면에 선다. 가을에 주로 자라는 만큼 푸르고 밝기보다는 붉고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 반딧불인 듯 곳곳을 밝혀주는 빛망울은 신비롭다.

햇살 좋은 봄날,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런 다음 양지 바른 마당에 누워 숲 속 구석구석 숨 쉬고 있는 생명들과 마주하자. 따뜻한 위로와 행복이 스며들 것이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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