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 세계종교평화협의회 사무처장)

‘전주 하면 꽃심, 꽃심 하면 전주’ 하는 문구가 곳곳에 보인다. 사실 전주를 꽃심으로 이야기하려면 그동안의 빅데이터를 통해 살핀 뒤에 종합적 결론으로 ‘꽃심’을 도출하는 것이 오늘날 통용되는 학문의 방법론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직관적 통찰만으로 꽃심이라고 하였다면, 이제 그 근거들을 역으로 제시하는 이전 학문의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듯이 전주를 철학, 사상, 종교의 면모에서 살펴보면 전주를 왜 꽃심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지 분명해진다.
불교의 유식사상, 유교 성리학의 간재사상, 양명학의 전통흐름, 천주교와 개신교의 천심(天心), 천도교의 수심(守心), 원불교의 마음, 민족종교들의 마음의 강조, 그리고 최명희의 꽃심에 이르기까지 전주는 마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법상종의 모태를 이루는 금산사와 귀신사, 그리고 전주 주변의 불교의 분위기 안에서 유식사상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는 마음 깊숙한 심연까지 다루는 사상으로, 현대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현상학, 해석학에서도 주시한다. 유교의 간재는 성리학의 우리나라 도통(道統)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성사심제(性師心弟)라 하여 마음(心)을 버금가는 자리로 놓는 과감한 주장을 했다. 이는 성리학계에서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심(心)이 곧 이(理)라는 주장을 편 양명학의 풍토가 전주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마음만 먹으면 천자도 될 수 있다고 주장한 정여립의 사상이라든지, 조선 양명학의 시조 남언경이 비슷한 시기에 전라감사로 있었던 사실을 보면, 당시 이단(異端) 취급을 받았었던 역사적 상황을 떠올릴 때 놀라운 사건이다. 서학(西學)이라는 학문으로부터 수용된 천주교의 경우, 다산(茶山)의 천심(天心)과 민심(民心)은 전라도와 전주 일대의 피난민에게서 잘 녹아있다. 천도교에서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 하늘을 공경한다는 수심경천(守心敬天)을 중심으로 하였고, 이것의 발로가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진다. 원불교의 경우에도 마음수련, 마음훈련처럼 마음을 바로 닦는 것을 강조하며, 증산교에서도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종교는 달라도 제각기 전라도와 전주 안에서 철학, 사상, 교리를 담았던 큰 틀에 마음이 중심에 놓여있음을 엿보게 된다.
비록 종교는 아니지만, 최명희는 혼불 안에서 꽃심으로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청암부인이 자신의 광에 들어온 도둑에게 식구들을 먹여 살리라고 쌀가마를 지고 가게 한 것이라든지, 노비의 집안에도 제사를 지낼 수 있게끔 챙겨주는 대목을 보면, 백성으로 취급받지도 않았던 여인, 죄인, 노비 등이 마음을 지닌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면모이고, 그것이 바로 꽃심의 한 단면이라 여겨진다.

마음의 기록이 넘쳐나는 전주에 과제가 남아있다. 전라도 지역은 불교 유식사상의 본고장이지만, 금산사의 출판구역인 광교원에서 혜덕왕사가 출판한 방대한 분량의 <유식술기>는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흔적도 알 수 없다. 간재의 사상은 전주가 본고향임에도 외부에서 논의가 더 뜨겁게 진행되고 있으며, 유교의 양명학을 세계적으로 주목하는데도 그 풍토가 있었던 전주에서는 오히려 움직임이 미미하다. 또 전라도는 천주교 신앙인들이 마음을 실천한 공소(公所)가 가장 많음에도 자료나 기록은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전주 하면 마음’일 수 있으려면, 이러한 부분의 기록과 기억이 풍성해져야 할 것이다. 최근 전주시에서 민간기록물 수집공모와 기획전시를 했는데, 그 안에 눈길을 끈 일기들에서 희망을 본다. 벽돌 블록공의 일기와 죽는 날까지도 하루 하루 명상을 하듯 기록을 남긴 선친 수첩일기가 그것인데, 백성(民)의 마음(心)이 그 안에 잘 담겨져 있기에, 전주사람 누구나가 자신의 기록을 모으고 나누면, 앞선 자료들을 찾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전주, 마음의 고향. 전주, 그래서 꽃심. 모두가 힘을 모아 기록과 자료를 공유하고 지금 세대와 이후 세대가 그것을 풀어낸다면, 왜 마음의 고향인지 왜 그래서 꽃심인지 보다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작업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미 시작되었고,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전주 시민들의 호응이 뜨거운 까닭에 빅데이터를 통해 전주만의 마음의 고향이 아니라 세상이 알아주는 마음의 고향임을 밝히는 일은 곧 이루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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