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흔히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고들 한다.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느낌이나 체험을 쓰는 장르라는 데서 이런 말이 나왔다. 수필이라는 용어는 중국 남송 때 홍매라는 사람이 ‘용재수필’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 서양에서는 에세이라고 부르는데 프랑스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기원한 것으로 본다.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다보면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필가라면 금아 피천득 선생(1910-2007)이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출생으로 상해 호강대학을 졸업한 그는 영문학자이자 시인 그리고 수필가를 겸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와 수필에서 뚜렷한 성과를 냈다. 그는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과 절제되고 간결하며 아름다운 문체로 명문장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의 수필 가운데서도 백미로 꼽히는 ‘인연’의 끝 대목을 보자.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아사코라는 일본 여성과의 아름답고 안타까운 인연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은근한 그리움 속에서도 열정이 깃든 이야기로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피천득 선생은 인연 이외에도 ‘은전 한 닢’, ‘수필’ 등 명문들을 남겼는데 지금도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피천득 선생이 세상을 뜬지 올해 5월로 10주기를 맞는다. 이에 맞춰 제자인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가 피천득 평전을 발간했다. 이 책에는 피천득 선생의 생애와 문학 세계 그리고 사상이 정리돼 있다. 정 교수는 “어린이 같은 나무 되기, 나무 같은 어린이 되기는 영원히 늙지 않는 5월의 소년 금아 피천득이 꿈꾸던 세상이다. 우리 모두 어린이가 되자. 우리 모두 나무가 되자”고 썼다. 순수한 동심을 간직한 채 평생 어린이 되기로 일관한 피천득 문학을 잘 기리고 있다.
  수필 문학으로 피천득만큼 명성과 찬사를 누리는 이도 드물다. 특히 그의 진솔한 마음과 빛나는 감성, 청정한 무욕의 삶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두고두고 여운을 남긴다. 그의 문학은 어지럽고 험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이자 위로가 될 수 있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아름다움과 함께 슬픔과 애달픔을 느낀다. ‘거문고를 타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그의 호가 새삼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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