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는 많지만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는 단 하나. 전주국제영화제에 있어 전주는 빼 놓을 수 없는 정체성일 거다.

전주를 말하거나 전주 출신 감독들이 만들고 전주를 배경삼은 ‘지역영화’를 봐야 하는 건 이 때문. 시민들에겐 친근한 정서를 자아내고 방문객들에겐 지역을 알리는 등 영화 보는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영화제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있다.

 

▲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단편

4월 30일 저녁 9시 30분 메가박스 6관에서 상영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단편’은 총 6편이며 그 중 4편이 지역영화다. 윤인상 감독의 ‘빈방’, 이시대 감독의 ‘오늘의 중력’, 김진아 감독의 ‘숨바꼭질’, 채한영 감독의 ‘선아의 방’.

윤 감독의 첫 연출작 ‘빈방’은 남자친구가 있지만 사랑 자체에 무기력한 여자의 심경을 카세트 테이프 폐공장(현 팔복예술공장)으로 드러낸다. GV(관객과의 대화)에서 만난 윤 감독은 “전 연인과의 오랜 연애로 사람과 사랑에 권태 혹은 공허함을 느끼는 여주인공의 마음을 낯선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제목처럼 방을 찾다가 폐공장을 보고 마음에 들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의 두 번째 단편 ‘오늘의 중력’은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이 야근은 기본이고 퇴근 후에도 업무에 시달리는 현실을 스마트폰으로 혼자 촬영했다. GV에서 이 감독은 “일본 과로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일상의 중력과 목매는 중력을 대조해 어떤 게 불편한 지 묻는다. ‘그렇게 사는 게 죽어가는 거’라는 메시지를 위해”라고 밝혔다.

김 감독의 ‘숨바꼭질’은 아빠의 가정폭력으로 엄마가 집을 나가는 등 어릴 적부터 혼자 사는 소은이의 이야기다. 집을 보러 온 모자로 인해 애써 잊고 지낸 기억을 마주하는데. 촬영 당시 고3이었던 감독의 맑고 섬세한 감정이 오롯하다.

채 감독은 지난해 연출한 ‘사막 한가운데서’에 이어 또 한 번 영화제를 찾았다. 사고로 할머니를 잃고 파지를 주우며 홀로 사는 선아는 할머니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 아저씨에게 사과를 받고, 할머니처럼 세상을 등진 동물과 함께 잠든다. 상처는 아물 수 있을까.

 

▲ 천사는 바이러스

매년 12월이면 전주 노송동에 기부 상자를 두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 벌써 17년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요즘이지만, 다른 의미의 영화 같은 현실도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귀한 사연이 영화화됐다.

4월 28일 오후 6시 메가박스 6관에서 만난 김성준 감독의 ‘천사는 바이러스’는 창작극회가 2011년 첫 선을 보인 동명의 연극에서 착안했다. 취재하겠다며 찾은 기자 아니 사기꾼 지훈이 기부금을 찾으려다 동네 사람들을 돕기까지 과정이 때론 유쾌하게, 때론 먹먹하게 펼쳐진다.

김 감독은 “투자받기 어려운 스타일의 영화고 하지 말란 이들도 많아 찍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마을을 둘러보고 마음을 굳혔다”면서 “기존 제목을 그대로 쓴 건 천사가 전염된다는 의미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기꾼 지훈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결국엔 연인이 되는 천지 역은 배우 이영아, 어르신 로맨스는 전무송 문 숙이 각각 맡았다. 전무송 씨는 “전주에서 늘 있어오는 아름다운 얘기를 매년 신문으로 접했고, 언젠간 영화화되리라 생각했다. 널리 알려져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근본이 됐음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영아 씨는 “촬영하고 나서 기부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쉽지 않겠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라며 “지붕 위를 뛰어다니고… 시끄러웠을 텐데 촬영에 협조해 준 주민들에게 고맙다”고 밝혔다.

단체관람한 노송동 한 단체는 “우리 동네가 영화화된 게 뿌듯하고 좋다. 잘 돼서 많은 이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김 감독은 “편집이 끝난 상태는 아니라 과하거나 급하거나 늘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좀 더 다듬을 것”이라고 마무리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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