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특유의 인사시스템을 바꾸기 시작했다. 연공서열 중시와 평생 고용 등의 제도를 버리고 성과주의 인

사시스템을 도입했다. 저성장과 버블 붕괴 등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후 업무 성과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을 실시했다. 종

업원 1천명 이상의 기업 가운데 무려 87%가 성과연봉제를 채택할 정도였다. 취지는 미국 예처럼 이 제도가 생산성을 높이고 더 많은 수익을 안겨준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미국식 제도가 일본의 토양에서는 잘 맞지 않아 부작용이 속출한 것이다. 자기 일만 몰두하다보니 협력 시스템이 약해졌고 직장 내 갈등과 위화감도 생겼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모델이 나왔다. 한쪽에서는 성과급을 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장기 고용을 보장하는 식이었다.

원래 미국에서는 1980년대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성과주의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제도는 미국 풍토와는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이 틀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성과주의가 들어왔다. 그 전에는 역시 일본식으로 연공서열에 따른 보상과 정기 승급제 그리고 정년 보장이 기본이었으나 성과주의 문화로 전환한 것이다. 기업들은 앞 다퉈 이를 실행에 옮겼지만 아직도 성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던 차에 박근혜 정부 들어 이 개념을 공공부문에 도입했고 현재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과 금융권 등에서 지금도 이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대통령 선거철을 맞아 금융 공공기관 노조들이 성과주의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유력 대선주자들도 재검토 입장을 밝혀 다시 찬반이 격돌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노조는 최근 ‘사측 강압에 의한 성과연봉제 도입’이었다며 반대 입장을 천명했고 기업은행 노조도 ‘일방적이고 무리한 도입과정’을 문제 삼아 재검토를 요청했다. 대선 주자들의 경우 문재인 후보는 ‘폐지 후 원점 재검토’, 안철수 후보는 ‘노사 협의 없이 강제 도입된 경우 재협의’ 등의 입장으로 전해졌다.

성과주의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 측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보면 성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듯하지만 일본의 예에서 보듯 고유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잘 맞아야 하는 조건이 따른다. 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중요하다.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지만 한국형 성과주의 개발과 정착이라는 과제는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과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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