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사람, 몇 명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세상에 살면서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인가? 헤어져 며칠만 지나도 그리운 사람,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몇 사람을 만나 서로의 정을 나누고 사는 것이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신정일이 새 에세이 <마음의 발견>(푸른영토)을 펴냈다. 신정일은 ‘마음이 머무는 곳’ ‘마음의 주인’ ‘지금 내 마음에 필요한 글자’ ‘당신의 마음속에 꽃’ ‘마음으로 느끼는 산수’ ‘그리움 때문에 산다’ 등 작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짚어 본다.
  ‘사람을 견딘다는 것, 마음의 문을 열어 둔다는 것, 그것은 대범한 일이다. 우리는 고결한 마음으로 후대할 줄 아는 마음을 알고 있으며, 창문의 커튼을 치고 덧문을 닫아버린 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가장 좋은 방들을 비워두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그들은 ‘견딜’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 <우상의 황혼> 중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 둘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살아갈수록 가장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이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해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어떤 특정한 단체에서도 그렇고, 개개인이 만나고 사는 그 몇 사람 구성원 사이에서도 또는 가족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일이다.
  한 번 닫아버린 마음을 연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오랜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이나 우정을 나누었던 관계에선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육당 최남선과 만해 한용운이 파고다 공원에서 마주쳤다. “만해 오랜만이올시다” 최남선이 한용운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 한용운은 “당신은 누구시오”하고 쌀쌀맞게 되물었다. “나 육당입니다” “육당이 누구시던가?” “육당 최남선이요. 그새 잊으셨습니까?” 그러자 한용운은 “내가 아는 육당은 벌써 죽어서 장송해 버렸소.”
  만해에게 변절한 육당은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세상을 살다가 보니, 내려놓을 것도 그렇다고 집어들 것도 별로 없다. 바꿔 말한다면 움켜쥘 것도 새어나갈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세상이라는 큰 마당에서는 매일 무언가를 놓고 온통 죽고 죽이는 큰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짊어지고 간단 말인가?’ 하면 분명한 답이 없는 것이 삶이다.
  촌각을 다투면서 변하는 마음, 그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기도 하고 땅의 마음이기도 하다. 신정일은 그 마음을 다잡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의 마음은 하루에 얼마나 여러 번 변하고, 그대에겐 마음의 문을 열어 둘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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