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와 월나라는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다. 열세에 있던 월나라 모사 범려는 서시라는 미인을 훈련시켜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바쳤다. 서시는 움직일 때마다 구름처럼 인파가 몰려 그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겠다고 아우성일 정도로 예뻤다. 또 물고기가 그녀의 미모에 반해 헤엄치는 것을 잊는가 하면 얼굴을 찌푸리는 자태가 너무 고와 숱한 여인들이 흉내 낼 지경이었다. 서시는 계획대로 부차를 꼬드겨 정사를 돌보지 않고 여색에만 빠지도록 했고 결국 오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서시의 경우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이용해 상대의 전의를 꺾고 몸을 허약하게 만드는 술책을 미인계라고 부른다. 유명한 병법서 삼십육계의 31계에 해당하는 전술이다. 삼십육계 중 열세를 우세로 바꾸어 패배를 승리로 이끄는 전략인 패전계에 속한다. 미인은 비용은 적게 드는 반면 효과는 만점이어서 역사에서 흔하게 등장한다.
  병법서들도 이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육도는 미녀와 음탕한 음악을 바쳐 그 군주의 뜻을 잠식한다는 구절이 있다. 또 한비자에도 “진 헌공이 우나라와 괵나라를 치려 할 때 우선 아름다운 여인을 바쳐 그 정치를 어지럽게 했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 그 외에도 서경과 춘추좌전, 사기 등에도 폭군 뒤에 도사리고 있는 미인들의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한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인을 경국지색이라고 부른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경국지색으로는 하나라 걸왕 때 말희를 비롯해 주나라 유왕의 후궁 포사, 삼국지 연의에서 여포를 격동시켜 동탁을 죽이게 만든 초선 등이 꼽힌다. 모두 미인계의 주인공들이다.
  얼마 전 주중 미국대사인 중국계 미국인 게리 로크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의를 표명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중화권 언론들은 그가 중국 정부의 미인계에 당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석연치 않은 사퇴 뒤에는 중국 여성 기업인과의 불륜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로크 전 대사가 이미 이혼한 사실이 밝혀져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했다. 이전에도 중국에서는 비슷한 미인계가 발각돼 파문을 일으킨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미인계 때문에 한 나라나 조직이 와해되고 붕괴되는 역사적 사례는 아주 흔하다. 영웅호걸이 미인을 좋아하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 약점을 파고드는 게 미인계다. 예나 지금이나 이 전술은 잘 먹힌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잘 나가는 사람들일수록 미인 뒤에 숨겨져 있는 치명적인 덫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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