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대변해 왔고 그 중에서도 음악은 가장 친근하게 존재해왔다. 보편적인 감정을 누군가의 특별한 생각과 음색으로 접했을 때 느끼는 공감과 희열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한국 사람들은 언제부터 노래를 불렀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백제에는 가요가 존재했다. <고려사-악지>에서 언급하는 ‘정읍사’ ‘방등산곡’ ‘선운산곡’ ‘무등산곡’ ‘지리산곡’이 그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평민들의 현실과 기다림을 다뤘다는 점이다.
  실제 정읍사는 행상을, 선운산곡은 부역을, 방등산곡과 무등산곡은 도적으로 인한 수난을, 지리산곡은 권력의 억압을 소재 삼는다. 정읍사는 행상 나간 남편을, 선운산곡은 부역 나간 남편을, 방등산곡은 도적에게 납치는 아내가 남편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줬던 백제가요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게 있다. ‘정읍사’다. 학창시절 되뇌던 어구는 희미해졌지만 그것이 백제와 전북에 갖는 의미는 여전히 선명하다. 
 
▲ 정읍사란..  
 ‘정읍사’는 정읍현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달에게 남편의 무사귀환을 비는 내용을 11행에 걸쳐 풀어내는 백제가요다. <고려사>에 명칭과 유래가, <악학궤범>에 가사가 전해진다.
  <고려사> 권 71, 악지 2를 보면 ‘정읍은 전주의 속현이다. 이 고을 사람이 행상을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아내가 산 위 바위에 올라 남편이 간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길을 오다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진흙의 더러움에 의탁하여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이 전하기를, 오랜 고개에 망부석이 있다고 한다’고 나와 있다.
  특별한 의미 없이 리듬을 맞추는 후렴구(여음)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를 제외하고 해석해 보면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멀리멀리 비춰 주십시오/…/장터(시장)에 가 계십니까/진 데(수렁물)를 밟을까 두렵습니다/…/어느 곳에나 짐을 풀어놓고 오십시오/우리 임 가시는데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정도다.
  구전으로 전해지다 한글로 기록돼 연대와 작자가 불분명하지만, 화자와 유래를 고려했을 때 행상 나간 남편을 둔 여인이 지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내용은 이렇다. 남편이 안전히 귀가하길 간절히 달에게 빌다가(1연) 불안과 의심에서 벗어나고자 가정(법)을 통해 안정을 구하고(2연), 불안과 의구심이 절정에 치달아 절박하게 하소연한다(3연). 
  여기에서 중요한 소재는 ‘달’이다. 높이 떠 먼 곳까지 비추는 특성을 활용, 임을 어둠에서 지켜주는 존재이자 화자와 임 사이 거리감을 좁혀주는, 사랑을 지켜주는 매개물로 형상화한다. 이는 ‘즌대’의 어둠과 대조돼, 밝음을 더한다.
  달을 달님이라 높이면서 비는 모습에서는 종교적 서원을 엿볼 수 있다. 짧은 글임에도 임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과 두려움이 깊게 배어나는 건 이 때문. 이후에는
    
▲ 정읍사의 문학적 가치는..
여러 면에서 뜻깊다. 위에서 언급했듯 현존하는 유일의 백제가요다. 백제가요 다섯 곡의 곡명과 유래는 <고려사-악지>에서 소개하지만 가사는 <악학궤범>에 ‘정읍사’만이 남아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부여, 공주엔 없는 전북만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자 백제가요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한글로 기록돼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다. 고대가요인 ‘공무도하가’나 ‘구지가’가 한자로 남은 반면 ‘정읍사’는 국문으로 전한다. 창작 당시부터 우리말로 지어지고 기록됐다는 뜻은 아니며, 구전되다 한글로 기록돼 전하는 가장 오래 된 시가란 뜻이다.
  더불어 시조 형식의 기원으로 꼽힌다. 후렴을 뺀 기본시행만 본다면 3연 6구 형식이 되고 각 연 음절수가 3음보 또는 4음보다. 3장 6구 형식인 시조의 근원으로 보는 게 무리는 아닐 거다. 
  내용면에서도 이후 여러 작품과 맥을 같이 한다. 임을 기다리는,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고려가요 ‘가시리’, 황진이의 시조, 김소월의 ‘진달래꽃’으로 이어진다. 특히 김소월의 ‘초혼’과 공통점을 가진다.
  ‘초혼’에서는 임과의 이별을 앞둔 화자가 임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소망의 극한을 돌로 응축하는데, 임을 기다리다 돌이 되고 말았다는 정읍사의 ‘망부석 설화’와 맞닿는다.
 

▲ 정읍사를 느낄 수 있는 곳
정읍사를 주제 삼아 1985년 정읍사문화공원을 조성했다. 백제 여인의 망부상과 정읍사 노래비, 정읍사 여인의 제례를 지내는 사우를 건립했으며 부부와 연인 사이 천년사랑을 바라며 테마형 숲길인 정읍사 오솔길을 조성했다.
  2.5m 화강암으로 만든 망부상은 두 손을 마주잡고 서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아내의 마음이 오롯하다. 
  오솔길 3코스 중 정읍사를 스토리 텔링한 1코스는 만남, 환희, 고뇌, 언약, 실천, 탄탄대로, 지킴 등 소주제로 나눠 부부나 연인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내용을 담는다. 총 6.4km. 가볍게 걷기 좋다.
  더불어 백제여인의 정과 의를 기리며 정읍사문화제와 부부사랑축제를 개최하고 백제여인의 부덕을 기리는 부도상을 제정, 매년 수여하고 있다. 정읍사문화제에서는 정읍사여인 제례와 정읍사 사랑의 커플 경관조성(체험), 부도상 시상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 및 부대행사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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