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 비해 조명되지 않은 고려시대 전주를 다각도로 살피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15일 연 제19회 전주학 학술대회 ‘고려시대의 전주’.

고려시대 전라도를 순찰하는 안찰사영이 이미 전주에 설치, 조선시대 전라감영을 거쳐 현재까지 전주가 전라도 거점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주목됐다. 전주지역 가문과 불교의 분포 및 추이, 성황신앙, 이규보의 기록을 통해 본 전주 등 논의가 없다시피 한 부분들도 언급됐다.

발표자로 나선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장)는 ‘고려시대 전주목의 설치와 역사적 위상’에서 고려시대 지방행정 개편을 설명한 후 그러한 과정이 조선시대 전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 관장은 “전주는 신라 9주의 하나였고 고려시대 전주목이란 계수관이 됐으며 5도제가 성립된 뒤에는 안찰사영이 설치됐다. 조선건국 후에는 전라감영이 있었다”면서 “신라에서 출발한 거점도시로서의 역사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고려시대 전주목은 계수관으로서 오늘날 전북권역에 해당되는 지역 거점도시요 통치의 중심일 뿐 아니라 안찰사영이 설치된 전라도 지방통치의 중심이었다 할 수 있다”고 했다.

토론에 나선 유호석(전북대 한국학자료센터)은 “12목 중 하나가 전주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통일신라 시대 이래 9주의 하나였고 신라 말 견훤이 전주지역을 수도로 후백제를 세웠다는 건 전주의 지방세력이 강력했음을 말해준다. 고려의 지방통치제제 속 전주의 위상을 세우는 주요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전주에 목이 설치되고 여러 속군현을 거느리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주가 갖고 있던 영향력 내지 기득권을 중앙정부가 실질적으로 인정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고려시대 전주지역 관향성씨와 세족’을 발표한 하태규(전북대 교수)는 “고려시대 전주 유씨, 전주 최씨, 전주 이씨 등 여러 가문들이 중앙 세족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행적이 드러난 인물은 많지 않은데, 고려 왕조의 후백제 고도 지역에 대한 차별 및 통제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려시대 전주 지역 불교계의 분포와 추이’의 장일규(동국대 교수)는 “고려시대 전주 지역 불교계 동향은 고려 불교 흐름과 다르지 않았다. 무인집권기 전주 사찰은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화됐으나 승형과 혜영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법상종 전통을 이어갔다. 고려말기에는 화엄 불교를 강조하며 유불동원사상을 내세운 나옹의 영향력이 제법 미쳤다”면서 “각 사찰과 연고된 지역 토착 세력 동향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사료를 통해서 본 고려시대 전주의 성황신앙’을 발표한 송화섭(전주대 교수)은 “후백제 멸망 이후 범김부대왕 일가 5위는 전주 성황신이 되고 사당은 성황사로 전환된다. 고려 말 전주 성황신에게 계국백의 백작이 봉작됐는데 이는 전주사람들의 정치적 지위와 사회적 신분이 대단히 높았음을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이규보의 기록을 통해 본 고려시기 전주, 전라북도’의 조법종(우석대 교수)은 이규보가 첫 부임지 전주 및 전주관할지역을 기록한 기행수필 성격의 작품 <남행월일기>를 토대로 전주 지역 공간을 살핀다. 전라감영에서 최근 출토된 전주목 명문와도 소개하고 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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