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폭탄주를 ‘좌로 한 잔, 우로 한 잔, 마음의 잔’이라며 이리저리 돌려 마실 때마다 귀한 달러가 뭉텅이로 날아간다”

외환위기가 계속되던 1996년7월9일자 한 일간신문의 기사 한 토막이다. 기사는 ‘폭탄 천국 위스키 천국’이라는 제목 아래 본격적으로 위스키가 선보인지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적인 소비 대국이 된 상황을 꼬집었다. 또 세계 위스키 업자들이 한국을 최고의 유망시장으로 보고 군침을 흘린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이처럼 한국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위스키 왕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소비가 많다.

원래 위스키는 곡류를 원료로 한 증류주다. 곡물들을 가루로 빻은 뒤 열을 가해 녹말을 만든다. 여기에 물을 섞어 보리와 맥아를 첨가한 다음 양조와 발효 그리고 증류를 거치면 완제품이 탄생한다. 처음에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지고 이것이 영국과 스코틀랜드로 전해졌다. 현재 위스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지만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가 품질이나 특성 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위스키는 구한말 처음 소개됐다. 그렇지만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해방 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모두에게 익숙한 술이 됐다. 1950-60년대에는 수요가 많아지자 소주에 색소를 섞어 만든 유사 위스키가 판을 쳤다.

주로 수입에 의존하다가 본격적으로 국산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70년대다. 국내 주류업체인 백화양조와 진로, 오비씨그램 등이 주정에다가 외국에서 수입한 위스키 원액을 섞어 위스키를 생산했다. 물론 정통 위스키와는 거리가 멀었다. 1984년에 원액함량이 100%인 국산 고급 위스키가 선을 보이기도 했지만 외국산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고급 술 접대문화의 상징인 위스키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주류업계에 의하면 올 들어 5월까지 위스키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8%가 감소했다. 2008년을 정점으로 9년째 내리막길이라고 한다. 그나마 독한 위스키 보다는 40도 이하의 저도주가 점차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기불황의 장기화에다 2차, 3차를 가는 음주문화가 사라지고 있고 최근에는 김영란법도 판매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위스키는 서민들이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운 고급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위스키 소비량에서 전 세계 5위권을 오르내린다. 창피한 감이 들 정도다. 다행히 그 소비가 감소세에 접어들어 다소 위안이 된다. 이 기회에 일그러진 우리 음주문화가 보다 건전하게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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