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상황이 나아질수록 내면의 갈증이 심해지는 건 세상의 이치일까. 먹고 사는 어려움을 줄이고자 치열한 생존경쟁에 뛰어든 현대인들은 쉼과 함께 채움을 얻을 수 있는 문화예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시대상에 발맞추듯 문화예술공간들도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변모하고 있고 전북도 예외가 아닌 가운데, 앞선 타 지역 사례를 살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2017 해외전시‧레지던스 지원사업 및 신진예술가 등 역량강화 워크숍’을 마련하고 지난 22일과 23일 강원도 정선 삼탄 아트마인과 원주 뮤지엄 산으로 향했다.

 

▲ 한 수집가가 실현한 예술광산, 삼탄 아트마인

지난해 큰 인기를 누린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더 특별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탄광을 재생한 게 그렇다. 1964년부터 2001년까지 삼척탄좌(삼탄) 정암광업소란 이름으로 운영되던 우리나라 대표탄광이 2013년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는데 실제 폐광을 고스란히 활용하고 관련 작품들을 선보인다.

삼척탄좌를 줄인 삼탄과 탄광의 영어식 표기 ‘콜 마인(Coal mine)’을 더한 명칭과 수직갱(탄광 운송수단) 철탑을 활용한 로고도 맥을 같이 한다. 이는 평범한 사람의 오랜, 지속적인 작품수집으로 가능해졌다.

탄광지역 산업문화유산보존, 복원사업의 하나인 삼탄아트밸리 조성사업으로 국비, 도비, 군비를 모두 받아 시설을 운영 및 관리할 수 있었다면 고 김민석 삼탄아트마인 전 대표의 35년 간 계속된 작품 수집으로 내부를 빼곡히 채울 수 있었다.

공연 및 전시 연출가였던 김 전 대표는 24세 때 20달러를 들고 미국에 건너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던 시절부터 수입의 20%를 소장에 투자했고, 오늘날 수십만 점을 보유할 수 있었다.

워크숍에 동행한 한 문화예술 기획자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을 때도 일정부분을 수집에 할애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랍고 자극이 됐다”면서 “몇몇 참가자들은 우리도 수익 일부를 모아서 작품을 구입하자고 제안키도 했다. 문화예술을 활성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4층에서 시작해 1층으로 향하는 공간 곳곳에는 김 전 대표의 컬렉션과 삼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로 가득하다. 현재는 부인인 손화순 대표가 전반을 맡고 있다.

손 대표는 “남편과 이곳을 방문한 날 첫 눈에 반했다. 좋은 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했지만 외딴 곳에서 문화예술공간을 꾸린다는 게 만만치 않았다”면서 “지금은 운영 노하우가 생겨 운영비도 줄었고 드라마 촬영지가 된 지난해부터는 꾸준히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복수의 문화예술인들은 “우리 지역에도 누에와 팔복문화예술공장 같은 재생공간이 있지만 모든 면에서 많이 다르다. 규모와 내용 모두 어마어마하다”면서 “소장품이 정말 많은데 한 번에 다 선보이기보다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 돌아가면서, 제대로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 사회공헌으로 빚은 쉼 그 자체, 뮤지엄 산

한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간은 1997년부터 운영해 온 종이박물관(페이퍼갤러리)과 2013년 개관한 미술관(청조갤러리)으로 이뤄진 종합 뮤지엄이다. 전자에서는 우리 종이의 산업적 가치보다는 문화적 가치에 맞춰 연구 및 소개하고 후자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망라한다.

기업의 사회 공헌 및 환원 차원에서 건립된 이곳은 예술과 자연이 하나 되는, 문화예술을 뛰어넘는 힐링의 공간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는 실외와 실내를 오가는 동선과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건축물, 제임스터렐의 상설전으로 구현된다.

웰컴센터, 꽃들로 만발한 플라워가든, 자작나무 오솔길을 지나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뮤지엄 부지 방문 때 느꼈던 ‘도시 번잡함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쌓인 아늑함’을 토대로 완성한 건축물은 실제로 안과 밖을 구분 짓지 않는 자유롭고 조화로운 모양새다. 카페, 체험 등 전시 외 즐길 거리도 많다.

그 끝에는 제임스 터렐관이 자리한다. 미국 출신인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시각예술에서 항상 조연이었던 ‘빛’을 천문학과 수학을 활용, 주연으로 끌어낸 작가다. 세계 곳곳에 그의 작품이 자리하지만 4개의 대표작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산이 유일하다.

10여명의 관람객은 도슨트의 설명과 지시에 따라 어두운 곳을 지나 그의 특별한 작품을 마주한다. 빛과 공간, 자연 속 명상하다 스스로의 내면으로 향하게끔 하는 방식은 산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청조갤러리에서는 상설전 ‘한국미술의 산책 Ⅱ:단색화’와 기획전 ‘색채의 재발견’이 개최, 색채의 유무로 명확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한 작가는 “처음엔 규모와 건축물에 놀랐고 두 번째 방문인 이번에는 뮤지엄도 관광산업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만큼 보다 다채로운 전시가 이뤄지면 좋겠고 지역에서도 이러한 기업 투자가 실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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