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대부라 불리는 동리 신재효는 대표적인 귀명창이다. 비록 직접 소리를 하지는 않았으나 소리꾼 못지않은 판소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깊었다는 것이다. 그는 판소리 이론가이자 연출가이며 광대의 지휘자였다. 중인 출신의 신재효는 여러 명창들을 길러내고 판소리 여섯마당을 편술한 업적을 냈다. 그는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소리를 할 수 있는지, 혹은 음이 잘 맞는지, 매너리즘에 빠져 기교에 치우지지는 않는지 정확히 지적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그를 귀명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귀명창은 판소리를 즐기는 사람 가운데서도 단순히 애호가 수준에 그치지 않고 소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감별하는 듣기 전문가다. 19세기 후반 판소리가 한참 주가를 올릴 때 양반에까지 애호층이 확대되고 연행공간도 실내로 옮겨가면서 귀명창의 중요성은 더하게 됐다.

그래서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라는 말이 나왔다. 청중들의 호응이 현장 예술인 판소리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며 그 다음이 고수, 마지막이 명창이라는 이야기다. 판소리는 무대에서 명창이 혼자 긴 내용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귀명창인 청중들과 쉼 없이 대화하며 함께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흔히 추임새라고 부르는 귀명창들의 반응은 연희 중간에 소리꾼의 흥을 돋우기 위해 관객들이 ‘얼씨구’, ‘좋다’, ‘아암’, ‘잘한다’, ‘그렇지’ 등을 발하는 것이다.

판소리계에서는 “귀명창은 좋은 소리꾼을 낳는다”거나 “귀명창 있는 곳에 명창이 있다”, “귀명창 되기가 소리꾼 되기보다 어렵다”는 등의 말이 있을 정도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토론회가 며칠 전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는 청중들에게도 심사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한다. 이 주장은 200-300명 정도의 평가단을 만들어 심사의 공정성을 부여하고 관객 흥행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반대의견도 있었다. 경연자가 사람을 동원할 가능성과 함께 전주에서 활동하는 경연자가 유리해질 것이라는 견해였다. 전주 대사습은 지난해 불거진 심사 비리와 법정다툼으로 파행을 겪고 있는 중이다.

판소리는 부르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듣기도 어렵다. 제대로 듣고 비평할만한 능력을 가진 귀명창은 그리 흔치 않다. 전주가 아무리 판소리의 본향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귀명창의 숫자가 많다고 보기 어렵다. 청중이 심사하는 것은 여러 모로 난점이 많다. 하지만 청중 심사는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방식이다. 어떤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향수층이 없으면 그 장르는 설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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