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부터 경술국치 전후, 일제 강점기까지 항일 운동을 펼치거나 절개를 지키려다 순절한 이들의 행적을 좇은 역사서가 한글 번역본으로 나왔다.

중요함에도 외면당했던 책과 저자가 새로이 조명됐을 뿐 아니라, 의병활동과 항일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호남 그 중에서도 임실을 그곳에서 나고 자란 글쓴이의 시선으로 마주해 뜻깊다.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가 펴낸 항일 역사서 <염재야록(念齋野錄)> 한글 번역본(신아출판사)은 임실 출신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염재 조희제 선생(1873~1939)이 6권 2책으로 쓴 <염재야록>을 한글로 풀어내고 역주를 단 것이다.

원본은 일본 수색을 피해 <덕촌수록>으로 위장, 마루 밑 숨겨놨다가 1950년 제자 조현수가 간행했다. 한글 번역본은 염재 선생 막내딸 고 조금숙(전 광복회 전북지부장) 씨가 생전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의뢰해 김준 교수가 번역하고 고 조금숙 지부장의 아들 이윤상(염재 선생 외손자)씨가 엮었다.

한글본을 처음 마련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이 당시 상황을 접하게 됐다. 의병 및 독립운동 연구에 필요함에도 등한시돼왔던 자료와 인물이 주목받고 있으며, 항일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고 비중 또한 절대적으로 많았던 임실 등 호남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은 저자인 염재 선생의 생애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1873년 12월 10일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에서 태어난 그는 유학을 토대로 학문을 닦고 나라에 충성한 가문의 전통을 고스란히 따랐다.

유학자로서 학문을 연마하는 한편 백성으로서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벗어나려 했는데 상당한 재력으로 임실, 순창, 남원 등지 의병들을 도왔고 옥고를 치르는 애국지사들도 뒷바라지했다.

이는 <염재야록>으로 이어졌다.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기존 역사서나 항일서적의 장단점을 파악한 뒤 수십 년에 걸쳐 1931년 초고를 완성했다. 하지만 1938년 편찬 사실이 발각돼 조희제를 비롯한 최병심(서문), 이병은(발문), 김영한(교정)은 임실경찰서에 연행됐고 고문 뒤 집으로 돌아온 염제 선생은 음독 자결했다.

책은 을미사변, 을사늑약, 경술국치, 일제강점기의 전말과 위인들을 밝히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위인들을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중에서도 호남 인사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한글 번역본에는 권 1~6이 쉽고 수려한 문장으로 쓰였다. 영인본도 자리한다.

민경현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장은 발간사에서 “애국지사들의 항일운동을 다룬 대한계년사나 매천야록이 이 시기 연구에 크게 활용되고 있는 반면 염재야록은 중요성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아직 한글 번역본이 없어서다”면서 “한글 번역본 출간은 학계가 오래 기다렸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립운동사 연구에 적극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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