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식(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사회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대표적인 법조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던 사법시험은 지난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실시된 제59회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직접 도전하였던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주변 사람들까지도 몸을 달구게 했던 사법시험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법시험에 항상 따라 다니던 말은 ‘개천의 용’이었다. 사법시험은 “고시서적과 먹고 잘 곳만 있으면 독학으로 합격할 수 있었던 시험”(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으로 이른바 ‘흙수저’들의 대표적인 신분상승의 사다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경제력이 있어야 입시위주의 사교육을 받는 사회구조가 형성되면서 돈이 없으면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힘들게 되었다. 즉, 지금도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사법시험 존치론이 내세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이미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대해서 생각해야할 것은 위와 같은 점뿐만이 아니다. 원래 ‘개천의 용’을 위한 사법시험 존치론은 개인적인 차원에 중점을 둔 사법시험에 대한 편향적 인식을 드러내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즉, 사법시험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는 사법제도라는 국가의 통치기구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인 법조인양성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사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과 양심에 따라서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법조인의 양성은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시험제도에 의해서 양성된 법조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사법시험제도는 1963년부터 시작되었지만, 매우 불유쾌하게도, 그 제도의 원형(原型)은 근대 일본의 법조인양성제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이 제도는 다음과 같은 점을 목표로 추구하였다. 즉,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빠르게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정책이나 행정을 둘러싸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국익을 옹호하는 입장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것이다. 이 과정은 선발과정과 양성 그리고 그 후의 사법행정 과정을 통하여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다. 즉,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매우 적은 수의 선발을 통해서 이들에게 엘리트의식을 불어 넣고 연수생들의 행동거지 하나 하나를 다 통제할 수 있는 사법연수소라는 매우 폐쇄적인 교육시스템을 통하여 국가이데올로기를 몸에 철저히 익히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양성된 법조인들의 국익 중심의 행동양식은 법관 또는 검사에 임명된 후에도 관료적 사법행정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확대?재생산 된다. 즉, 행정조직을 통하여 법관의 재판성향 심지어는 사적인 활동까지 기록하여 인사에 활용하기 때문에 국익과 충돌하는 재판을 함에 있어서는 시민의 권리를 고려하기에 앞서 먼저 ‘위의 뜻’이 무엇인가를 헤아릴 수밖에 없게 된다. 헌법에 재판의 권리가 보장된 법관이 이러한데 철저한 상명하복에 근거하여 근무하는 검찰조직의 경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위와 같은 ‘사법연수소’ 방식에 의한 법조인 양성제도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의 세 곳뿐이었다.
  사법시험 존치론이 내세우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까지 무너진 지금 사법시험제도에 의한 법조인 양성의 방식의 문제점을 여기서 새삼스럽게 되풀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익 또는 공익이라는 지나치게 불명확한 개념 아래 얼마나 많은 시민의 인권과 재산이 침해당하였던가? 현재 문재인 정부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질서형성의 노력에서 볼 수 있듯이 구름 위에 앉아 있던 법조인들도 이제 내려와서 시민들의 눈  높이에서 사물을 보고 대화 가능한 업무능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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