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빗줄기, 작업실 앞마당 돌, 무심히 자란 잡초, 바람을 따라 줏대 없이 흔들리는 나무…너무 자연스러운 존재들은 인식하지 못한 찰나 아로새겨지고, 크든 작든 삶에 묻어난다.

26일부터 31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 ‘잔상의 정원, 그 경계의 행위’를 여는 유시라 작가의 주제는 ‘각인’이다. 자연의 움직임을 무심코 바라보다 이내 빠져드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그 순간을 일기나 사진이 아닌 한지로 시각화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등 부드러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곡선에 감성을 담던 첫 전시와 다르지만, 깊은 사유 끝 잊고 있던 무언가를 짚는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한지가 소재인 것과 그것을 다루는 과정도 닮았다.

한지의 물성 그 처음으로 돌아가서 손수 만든 화면(판)에서 종이를 뜬 다음 자르거나 찢어서 화면에 붙인다. 반복되는 행위 속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며 당시에 다다른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남달랐을 각인의 순간은 아크릴물감의 짙은 색감과 단순하지만 꺾임이 있는 선을 통해 강렬하게 와 닿는다. 이후에는 자신 나아가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여백이 찾아든다.

예원예술대 한지조형디자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북대 서양화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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