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호 전북농협 본부장

장마가 끝나는 7월말부터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가족, 친구와 함께 휴가를 보낼 생각에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듯하다.

한자어 휴가(休暇)의 ‘쉴 휴(休)’자는 ‘사람인 변(人)’에 ‘나무 목(木)’자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자연의 품이야 말로 인간의 쉼터라는 옛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가 있어 흥미롭다.  

조선 후기 화가 이재관은 자신의 작품인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에서 화면 중심에 장송(長松)을 근경으로 배치시키고 그 아래에 늙은 처사와 동자가 서로 기대며 한가로이 쉬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보고 있노라면 나뭇잎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과 바위자락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휴(休)라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송하처사도는 그 어떠한 말보다도 잘 설명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여유를 가지고 즐겨야 될 휴가가 때만 되면 치르는 연례행사가 된 듯하다. 마치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크 시즌’에 휴가를 내고 매스컴이나 인터넷에서 소개된 유명 관광지들을 찾고 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면 기대와는 사뭇 달라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붐비는 인파와 바가지 상혼은 모처럼의 휴가에 즐거움과 여유 대신 스트레스를 안겨 주기도 한다. 송하처사도 속 여유와 풍류는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 때문에 최근 우리의 휴가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판에 박힌 휴가 일정을 지양하고 내실 있게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몇 년 전부터 농촌 팜스테이 마을이 주목을 받고 있다. 건전하고 알뜰한 휴가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골의 넉넉한 인심과 자연이 주는 느긋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팜스테이 마을이란 농장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팜(farm)’과 머문다는 의미의 ‘스테이(stay)’를 합성한 말로, 농가에서 숙식하면서 농촌의 일상을 체험 하는 농촌체험 관광마을을 의미한다.

팜스테이 마을은 유형별로 농촌생활형, 자연생태형, 체험형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농촌생활형은 농촌의 민가나 펜션에 머무르면서 밭에서 직접 수확한 신선한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호텔이나 콘도의 정형화된 시설에 흥미를 잃은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자연생태형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한껏 느끼기에 좋다. 보통 자연생태형 마을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계곡이나 갯벌체험이 가능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어릴 적 바닷가에서 바지락 캐고 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즐거운 추억들을 회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체험형은 6차산업형이라고도 하는데 농작물이 음식이 되는 식(食)ㆍ농(農)과정을 체험할 수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 마을에서 직접 수확한 신선한 농산물로 고추장, 피자, 치즈 만들기 등 연령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농촌마을 체험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에 비해 농촌의 숙박시설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만 있다면 농촌의 일상과 자연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현재 농촌은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사태에 이어 극심한 가뭄과 폭염·집중호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침 이러한 가운데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여름은 해외여행 대신에 국내에서, 그리고 우리 농어촌에서 여름휴가를 보내자”는 대국민 캠페인을 제안했다. 이는 휴가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침체된 농촌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어 꼭 필요한 제안이라 생각된다.

올여름은 찜통 같은 더위와 함께 우리 곁으로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 휴가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 더위에 지친 심신을 위해 농촌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그곳에서 옛 그림 속 늙은 처사가 나무 그늘 아래 음미했던 선선한 바람과 맑은 물소리를 마음껏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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