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간 인도인들의 생활을 규율해 온 신분제도는 카스트다. 모두 네 계급으로 나뉘는데 정점에는 승려 계급인 브라만이 있고 그 아래 왕과 귀족인 크샤트리아, 그 다음은 상인과 농민 계급인 바이샤, 마지막으로 피정복민이나 노예 계급인 수드라 순으로 돼 있다. 오늘날에도 이 구분은 매우 엄격해서 지키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제재가 따른다. 물론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갈등요소다.

그런데 이 카스트에 들지 못하는 제5계급이 존재한다. 이른바 불가촉천민계급이다. 하리잔이나 달리트, 예정된 카스트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불가촉천민과 접촉하거나 그림자만 스쳐도 오염 즉 부정을 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불가촉천민 계급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밤에만 활동해야 했고 사원을 출입하지 못했으며 마을 공동우물도 사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신발도 못 신었다. 직업도 비천했다. 오물 수거나 시체 처리, 가죽 가공, 세탁 등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이 차별에 대한 저항이 치열했다. 그 대표적 인물은 암베드 카르다. 불가촉천민 출신인 그는 온갖 모멸과 폭행 등에 시달리면서도 학업에 매진해 외국유학을 다녀오고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그는 1947년 법무장관 등 공직을 맡아 활약하면서 불가촉천민 해방운동을 벌였다. 암베드 카르 등의 공헌으로 1955년 불가촉천민법이 제정돼 이들도 법적으로는 대학을 가고 공직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최근 인도에서는 사상 두 번째로 불가촉천민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인도 국민당 소속 람 나트 코빈드가 그다. 그는 하리잔 가정에서 태어나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상원의원, 주지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 법적으로는 사회 진출 길이 열려 있는 불가촉천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문은 매우 좁다. 그럼에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는 취임 소감에서 ‘다양성 속의 통합’을 외쳤다.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는 아직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권 문제는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활력을 저해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이를 완화하고 있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다. 하리잔 출신 대통령 취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도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해 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뜨겁다. 그만큼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반증이다. 인도의 람 나트 코빈드 대통령 같은 인물이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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