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선 전북대 고분자나노공학과 교수

 

최근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제 개편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작년부터 자율학기제가 실시되어 본인의 연구실인 재생의학·생체재료 연구실에 학생들의 견학이 부쩍 늘었다. 또한 청소년 미래 설계 강좌 등이 각 학교마다 개최되어 학생들에게는 교외생활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일견 어린 학생들의 장래에 어떠한 직업을 갖게 되고, 또한 현재 흘러가고 있는 과학,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 어느 정도의 첨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미리 아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려운 첨단과학학문을 어린 학생들한테 어떠한 눈높이로 강의하여야 최대한 많은 지식을 전달 할 수 있을까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숙제이다.
 
여기에 최근에 시작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자연히 초중고교생들한테 여름 방학숙제가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아예 숙제도 없고 더구나 보충수업도 못 하게 하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어찌하였든 교육부의 교육정책에 따르는 것이기는 하나 아주 옛날인 40~50여 년 전인 우리의 초중고학창 시절의 방학하고는 사뭇 달라 옛 상념에 빠져본다.
 
우선 방학이 시작되면 방학숙제가 많았다. 우선 일기는 무조건 써야 되었다. 이것이 매일 써나가면 제일 바람직하나 미루다 미루다 방학 끝나기 며칠 전에 쓰기 시작하여, 지난 기억을 더듬어 써야 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날씨였다. 요즘 같이 인터넷이 있었으면 모르나 그리고 신문에 날씨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지역의 날씨하고는 관계가 없어서 곤란에 빠지곤 하였다. 결국에는 제대로 쓴 친구를 수소문하여 날씨를 얻어서 썼다.
 
일종의 선행학습이었기는 하나 2학기 수업과목의 참고서인 전과를 어느 정도 풀어 가야했다. 만들기 공작(工作) 숙제도 있어서 개학날 등교 시에는 그림·만들기 등의 부피가 큰 숙제를 가지고 가느라 멋진 퍼레이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학교에서 기르던 토끼 및 여러 동물들의 겨울용 사료를 준비하느라 아카시아 잎, 씀바귀 등을 따서 시래기 엮듯이 엮어서 건조하여 일정한 크기로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때에 따라서 쥐꼬리 한 20여개씩 과제물로 제출하여야 했다. 다행이 주어진 만큼 쥐를 잡으면 큰 문제는 없으나, 잡을 수가 없는 곳에서 거주한다던지, 못 잡을 경우에는 결국은 숙제를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편법으로 오징어 다리를 잘라서 흙바닥에 문지르면 흡사 쥐꼬리처럼 보여 이를 선생님 몰래 제출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보리를 베고 난 후의 밭에 가서 보리이삭을 주어서 편지봉투에 한 봉투씩 담아내기, 물론 가을에 벼를 베고 난 이후의 밭에서도 벼이삭을 주어서 제출했다. 코스모스 씨를 채취하여 숙제로 제출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식용유를 짜서 수출을 한다고 하였다. 송충이 한 깡통씩 잡아서 과제물로도 제출을 하였는데, 때에 따라서는 특활시간에 학교근처의 산으로 송충이를 잡으러 갔었다. 웬 송충이가 그렇게 많았었는지 큰 구덩이를 파고 모든 학생들이 잡은 송충이를 쏟아 놓으면 바닥이 파도치는 것처럼 움직였었다. 파리를 성냥갑에 하나 가득씩 잡아오기, 풀씨를 훑어서 편지봉투로 한 봉투씩 채취해오기, 이들 풀씨는 무너지는 산이나 둑에 뿌려서 풀이 나게 하여 이른바 사방공사(砂防工事)용, 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 하는 곳에 쓰인다 하였다.

봄방학에는 보리밭 밟기를 하였는데, 전체 학생이 출동하여 어깨동무를 하고 한 줄로 죽 늘어서서 하루 종일 보리밭 밟기를 하였다. 이는 보리밭이 얼면 서릿발이 밭을 들뜨게 만들어서, 어린 보리 싹이 동해를 입어, 얼어 죽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었다.
 
요즈음에는 플랑카드도 아주 예쁘게 만들기도 잘 만드나 예전에는 표어를 만들어서 집안 기둥에 붙여놓거나 문에 붙여 놓았었다. 이 표어는 인쇄하거나 등사를 하면 되는데 이러한 돈이 없으니 시험지를 반을 잘라서 글씨를 쓰고 검은 볼펜으로 글씨 부분을 색칠하여 직접 표어를 만들었다.

반공방첩 등 여러 가지 표어를 만들었으나, 중학생 수준에 어려운 단어임에도 지금도 명확히 기억하는 표어가 소주밀식(小株密植)이다. 이 뜻은 벼를 심을 때 직파를 하지 말고 모를 심되, 한 포기의 모수를 적게 하고 전체적으로는 빽빽하게 심어 결국에는 전체의 포기 수를 많게 심으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숙제가 식물 또는 곤충 표본을 만들어 제출하는 숙제였다. 풀 또는 어린 나무를 상하지 않게 채취하여 책갈피 속에 넣고 다듬이 돌 등으로 눌러서 납작하게 건조시켰다. 달력종이 뒷면에 고정시켜서 식물이름을 찾아 써넣고 식물표본집을 만들었다. 곤충도 마찬가지로 상하지 않게 포획하여 알코올 처리하여 건조한 후 실핀을 이용하여 골판지 박스에 고정시켜서 나만의 곤충표본집을 만들어 제출하곤 하였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나라가 아주 못 살았을 때 생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숙제였다. 지금의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무슨 이러한  숙제가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우리 나름대로 그 시대에는 최선을 다 한 것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공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요즘 아이들의 방학생활이 교육당국에서는 공부보다는 자기계발이나 여가선용 쪽으로 방학을 보내라고 하는 뜻은 맞다. 그러나 실제로는 방학 내내 학원 또는 보습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을 보거나, 맞벌이하시는 부모들이 방학 내내 집에 있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에 옛날 방학숙제를 반추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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