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와스프다. 와스프란 화이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머릿글자를 딴 말이다. 그러니까 앵글로 색슨계 신교도가 미국의 주류다. 이들의 전체 인구 중 비중은 25% 정도에 불과하지만 정계든 재계든 간에 주도권을 쥐고 흔든다.

그 연원은 멀리 16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청교도 102명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영국 본토에서 성공회와 대립하던 신교도들이 종교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넘어온 것이다. 60일간의 어려운 항해 끝에 플리머스에 도착한 이들은 처음에는 추위와 괴혈병 등으로 반수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점차 적응해 와스프로서 미국 사회의 시조가 됐다.

이후 와스프들은 미국의 돈과 권력을 거의 독차지 하다시피 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200대 기업이 대부분 이들의 소유였으며 대통령과 국회의원 들 거의 모두도 와스프 출신이었다. 오늘날까지 와스프 출신이 아닌 대통령은 아일랜드계 가톨릭인 케네디 대통령과 흑인인 오바마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1020년대 대공황 이후 와스프 자본가들의 상당수가 무너지고 유대인 등 신진 세력들이 재계에서 힘을 쓰는 등 판도가 약간 변화했다. 또 소위 멜팅폿이란 용어가 쓰이는 것도 와스프의 독점체제가 미미하게나마 흔들리는 추세를 말해준다. 멜팅폿은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비유한 것으로 마치 용광로처럼 여러 인종의 이민자들이 미국에 들어와 녹아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을 지배하는 계층은 와스프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미국 명문사학인 하버드 대학의 올해 9월 신입생 중 소수인종 비율이 백인 비율을 넘어섰다고 한다. 38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올 가을 신입생 2056명 중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소수인종 비율은 50.8%였다. 그간 하버드 대학은 주로 백인 주류 진영의 지도자를 배출하는 핵심 통로 역할을 해온 데 비추면 놀라운 현상이다. 언론들은 이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하버드 대학에서 백인 비율이 절반을 밑돌았다는 것은 일종의 이정표와 같은 사건이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미국 사회는 의외로 실력 보다는 인종이나 종교 등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권력가 부가 쏠리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번 하버드 대학 신입생 소수인종 강세는 그런 견지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를 계기로 와스프의 독주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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