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 전주비전대 자동차공학과 교수
지난 1983년 10월. 아직도 우리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미얀마(당시 버마) 아웅산묘지 참배 도중 끔찍한 폭발사건이 있었다. 당시 버마에 외교 순방중이였던 우리나라 사찰단 일행이 사전 공작된 북한의 폭탄 테러에 의해 외교 고위 관직자 17명의 순직과 그 이상의 많은 부상 등의 인명 피해를 입혀 당시 우리 국민들을 분노에 끓게 했던 일이었다. 당시 10살이였던 필자에게 이런 뉴스에 처음 들어본 나라인 버마 아니 미얀마에 대한 이미지는 안전하지 못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었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 대륙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중심으로 많은 왕조가 크고 작은 전쟁에 흥망성쇄를 반복하여왔다. 특히, 영국과의 3번의 전쟁에서 패해 1885년에 인도와 함께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아시아 식민지의 거점이 되었으며, 이는 또 다양한 문화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미얀마의 종교는 인도에서 유입된 불교와 힌두교가 국민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나, 영국을 통해 전파된 기독교는 전체의 약 5% 정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또한 비(非)버마족의 대표 민족인 카렌족이 받아들여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미얀마는 비교적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으나 도로, 철도 등의 육상교통은 아직 빈약한 데 반해 항공교통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이용할 수 있다.
미얀마는 1997년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일명 아세안(ASEAN)에 가입하면서 다양한 정치 경제적 협력 기반이 탄탄해졌다. 우리나라도 약 2조 3천억 달러 규모의 동남아시아 거대시장이 무역, 투자의 대상지역으로 대두되면서 지난 2009년, 2014년 두 차례의 걸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전라북도에서도 미얀마와 다양한 교류를 진행 중에 있다. 올해 2월에는 미얀마 산업부 관계자 일행 10여명이 전라북도를 방문해 (재)자동차융합기술원, 전북뿌리산업연합회 등 산연관이 모여 우리 지역의 자동차 및 뿌리기업들의 미얀마 시장 진출은 물론 공동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한 바 있으며, 향후 우리 지역과 미얀마와 상생 발전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가고 있다.
도내 주요 대학도 다양한 네트워크를 진행 중에 있으며, 필자가 몸담고 있는 전주비전대학교는 미얀마와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서 잠깐 언급한 미얀마 내 카친족은 불교국가 속에서도 기독교를 받아들여 기존 버마족과의 종교적 정치적 대립을 하고 있는 종족으로 미얀마 북부의 카친주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의 종교적 이념, 소수이면서도 독립을 위한 저항정신, 병과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난민들에 대한 박애주의 등이 맞물려, 특별한 인연으로 희망을 심어주는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로서 배움의 나눔을 통해 한국의 교육과 기술을 전하는 것은 그 어떤 원조나 지원보다 미래지향적인 진실된 나눔이 아닐까 싶다.
현재 카친주 주도(州都) 미치나에는 비전한국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80여명의 미얀마 젊은이들이 한국 유학을 통해 자동차, 건축, 미용, 치위생 등 산업적 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일꾼으로서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필자가 생전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하게 된 때는 올해 2월말경이었다.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희미한 그들의 목표를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한 사명으로 떠난 길이였다. 미얀마 수도인 양곤을 경유해 아직 내전 중인 미치나로 향해 가는 내내, 걱정과 염려로 배웅하던 가족들의 얼굴들이 계속 스쳐 지나갔다.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미얀마 곳곳에는 우리네 부모님들이 살아왔던 그 배고프고 땀흘려 일궈온 그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총 9시간 가량의 비행 후 도착한 미치나는 역시나 6~70년대를 연상시키는 과거 속으로의 여행과 같은 느낌이였다.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중고 일본차, 번호판도 없이 안전벨트도 없이 달리는 자동차, 영국 식민지의 잔재로 우리와 달리 좌측통행을 하고 있는 도로교통시스템.  현지 학교에서 열심히 한국어를 읽고 쓰고있는 학생들을 마주했을 때 순간 감정이 복받쳐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참아냈다. 그 맑은 눈 속에서 어릴 적 코 찔찔 흘리던 내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에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그들에게서 복잡하고 스마트한 세상에서 잊고 살았던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대낌이 있었다.
3일 간 일정 내에 그들에게 반드시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 있다.
바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환하게 비추는 희망이다. 나라와 언어와 문화는 서로 달라도 전해줄 수 있는 사람들간의 진한 인정이였다. 1년 후에 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가슴에 묻어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줄곤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다. 미얀마는 발전할 것이고, 바로 너희들이 그 희망의 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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