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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l승인2017.08.16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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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양반들이 살았던 가장 크고 오래된 집 가운데 하나가 임청각이다. 안동시 법흥동에 위치한 임청각은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보물 182호이기도 하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의 아들 영산 현감 이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자리를 잡았고 그의 셋째 아들 이명이 집을 지었다. 99칸의 전통복합주택 형식을 갖춘 임청각은 본채와 별채 그리고 군자정이라는 정자로 이뤄져 있다. 집안에 들어서서 아래를 굽어보면 낙동강이 보이고 동쪽 작은 연못에는 수련이 소담스레 피어 있는 등 경치가 수려해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고택답게 이곳에 서려 있는 전통들도 유구하다. 임청각이라는 이름은 중국 동진시대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했다.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는 시 구절에서 임(臨)자와 청(淸)자를 따왔다. 또한 대청에 걸린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로 집의 아취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 고택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여기서 태어난 종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 때문이다. 그는 명문가 후손으로서 편안한 삶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일제 강점기 압박과 설움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삶을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들들 대부분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후에도 조카 등 3대 9명이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는 등 ‘충의의 종가’로서 면모를 확고히 했다.

특히 임청각은 일제의 미움을 받아 중앙선 철도를 개설할 때 마당 한가운데로 철길이 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 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청각에 대해 언급해 주목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임청각은 일제 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라며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임청각을 반 토막 낸 일제의 보복을 거론한 뒤 “임청각의 모숩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명문가 중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우가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임청각과 고성 이씨 가문은 극히 드문 예다. 대통령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례는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을 주고 있다. 차제에 임청각을 본래 모습으로 복원해 후세에 길이 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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