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 전라북도 기획조정실장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쓴 황제들의 생애(De vita Caesarum)란 책에 나오는 이 말은 카이사르 암살 후 벌어진 내전을 종식시키고 로마제정을 연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로마어로 ‘천천히’를 의미하는 lente와 ‘서두르다’를 의미하는 festina로 이루어진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는 모순이다. 천천히 하면 서두를 수 없고,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곱씹어 되뇌어 보면 모순된 문장 속에 담겨 있는 삶의 지혜가 느껴진다. ‘천천히’라는 말에는 혜안(慧眼)의 중요성이 내포되어 있다. 혜안이란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을 뜻한다.이 안목과 식견은 깊고 넓게 사고하고,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자세로부터 나온다. 혜안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일을 할 때 명확한 방향설정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편협하고 조급한 마음에 방향 설정을 잘못해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가 예전부터 많았기 때문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도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앞만 보지 않고 좌, 우, 뒤도 돌아보는 차분함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명확하게 방향을 설정할 수 있고 체계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서둘러라’는 말에는 타이밍의 중요성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적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危機)와 기회(機會)는 어떻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회를 놓치면 위기에 직면하고,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찾아온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온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천천히’와 ‘서둘러라’를 나누어 설명했지만 둘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서둘러라’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방향설정과 실행력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오히려 목표에서 멀어진다. 반면 방향이 잘 잡혔더라도 철저한 사전 준비와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명확하게 방향을 설정하고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여, 목표를 향해 속도감 있게 매진해 나가는 것, 이것이 ‘천천히 서둘러라’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다.
  전라북도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쉼없이 달려왔다. 치열한 고민 끝에 전북발전을 위한 혜안으로 우리가 잘하고 또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내발적 발전전략을 채택했고, 삼락농정, 탄소산업, 토탈관광 등 3대 핵심 시책과 새만금 사업의 내실을 다져왔다. 새정부 출범과정에서는 기회를 잡기 위해 한 발 앞서 준비했고 실행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전북 몫 찾기’는 도민과 주요 대선 주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도가 원하는 주요 사업이 대선공약에도 반영됐다. 새만금은 지역공약이자 개발사업으로는 유일하게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전북발전의 적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킹핀(KingPin) 전략과 절문근사(切問近思)의 자세를 가지고 공약사업과 국정과제가 제대로 이행되고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주도 면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 새정부에서 전북이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역량과 힘을 모아야 한다.
  천천히 서두르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치열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면서 결정적 순간에 온 역량을 집중하는 자세와 지혜는 미래를 선도하는 힘이 될 것이다. 팍스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는 200년간의 로마 최고의 평화와 번영기를 이끈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 서둘러라!’의 교훈은 2020 전북 대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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